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검호
ㆍ작성일	2018-01-02 14:57

ㆍIP: 223.xxx.113

승봉도의 해후

평생 직업한번 가져본적 없으신 장인어르신은
딸만 다섯을 낳으신 장모님을 외면하기 시작하시더니
쉰 줄에 들어서는 해에 아랫동네 살던 젊은 과수댁과
친분을 쌓기 시작하셨다

배농사는 뒷전이고 짬만나면 꽃 단장을 하시고
아랫동네로 내려가서 과수댁과 마주 앉아 막걸리를
주고 받으며 놀다 밤 늦게 돌아오시는 일이 잦았다

온 동네에 금새 소문이 퍼졌고 한 성질하시는 장모님
바작대기를 들고 쳐 들어가서 술상을 뒤엎고
두분을 마구 때려서 딸래미들이 총출동하고 동네 주민들이 간신히 뜯어 말려서 겨우 진정이 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장모님 기세에 눌린 과수댁은
어디론가 잠적을 했고 장인어른은 한동안 마음을
못잡고 술로 자내셨다
사람 찾기 어렵던 시절이라 어디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소식도 모른 채 35년이란 세월이 흘러가고
장인께서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시는 황혼이 되셨다

지난 여름,
장인께서 승봉도로 휴가를 가자고 제안하셨다
가족들 모두 어리둥절했던 것은 평소에 섬여행은 별로 안좋아하시는 터라 뜬금없는 제안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3시간 남게 배를 타고 가는 여정은 지루했고
어르신은 거의 난간에 붙잡고 바다를 보시며 가셨다
섬에 도착하니 해질 무렵인데 나를 부르시더니
꼬깃꼬깃 접힌 쪽지 한장을 주시면서 지팡이를 잡고
일어나셨다

쪽지엔 ' 조효임 75살 '이라 쓰여있었고
어르신의 표정은 붉게 상기되셨다
나는 누구시냐고 묻지않았다 오래전 부터 장모님을
속타게 했던 여인네 이야기를 아내로 부터 자주 들어
온 터라 대략 짐작이 되었고 장인께서 굳이 승봉도로
휴가를 고집하신 연유를 알것 같아서였다

주민센터에 가보니 사람이 없어서 보건소로 가서
쪽지를 내밀고 사시는 곳을 물으니
창문을 열고 할머니 사시는 동네 위치와 집 모양새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찾아간 곳은 허름한 스레트 집이었는데 마당에 잡초가 우거졌고 낡은 돗자리에 술취한 할머니 한분이 노래를
부르며 앉아계셨다
두분이 한참을 바라보고 계시더니 이내 그 할머니께서
천천히 일어나시면서 "오라버니..." 하고는 금새 울먹이셨다
장인께서는 다가가서 어깨를 감싸시고 한참을 말없이
서 계시다가 " 살아있었구만..." 하시면서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셨다

나를 돌아보시더니 " 가서 자네 장모님 데불고 오게 "
하시는게 아닌가??
아무리 봐도 보통사이는 아닌거 같은데 장모님을 모시고
와서 뭘 어쩌시려고 그러시남??

장모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이내 눈치를 채시고
일어서시는데 아내와 처형도 무슨 구경꺼리나 생긴 양
흥미로운 표정으로 따라 나섰다

3자 대면의 순간은 침묵 속에 이루어졌다
그 침묵은 곧 울음으로 이어졌고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더욱 숙연해졌다
" 언니 미안해요 저도 고생 많이하고 살았어요 "
" 이 사람아 다 늙어 죽을 때가 되었는데 그런 말은
뭣하러 하는가 "
장모님도 우시고 장인어른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셨다
평상에 앉아 늘어 놓으신 할머니의 인생여정은 참으로
기구하기 이를데 없었다

당시 장모님에게 쫒겨서 울진으로 갔다가 어느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으나 아들 하나 낳고 이혼을 했고 다시
포항의 어느 남자를 소개 받아 동거를 하며 딸을 낳았으나
장애아를 낳아 온갖 고생을 하셨는데 그 남편도 암으로
세상을 뜨자 이 곳 승봉도로 숨어들어와 기초수급자로
살아가시는 형편이셨다

아내와 처형도 그동안 미워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를 꼭 안아주었고 장인께서는 장모님과 그 분의
손목을 동시에 잡으시고 한참을 서 계셨다

장인께서는 자신 때문에 동네를 떠나서 온갖 고생을 하며
불행하게 살고있다는 할머님의 소식을 간간히 접하시다가 구순을 바라보는 연세가 되시니 꼭 한번은
만나보고 싶었고 또 장모님과 화해도 시켜드리고 싶은
마지막 소원이 있으셨는데 이제 그 절실했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세분이 한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난 세월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셨다
작별인사를 하고 문을 나서는데 할머니께서 두분의 손을
잡으시고 " 오빠 언니 좋은거 많이 자시고 오래 사셔야
우리 한번 더 볼톈디..."하며 또 우시니
장모님께서도 어깨를 감싸시면서 " 살아 못보면 저승에서
만나것제 그 때는 안 쫒아 낼께 " 하시면서 우셨고
먼 바다를 바라보시는 장인어른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셨다

무상한 세월 앞에 사랑도 미움도 다 옛 이야기일 뿐...
황혼의 길목에 서신 세분의 아름다운 '해후'와 '화해'에
나는 말할수 없는 전율과 감동에 휩싸였다
장인어른의 의리와 지혜에 탄복했고 장모님의
바다같은 아량에 또 한번 감격하였다

이제 세분 모두 노환이 깊으시니 언제 또 볼 수 있으랴
집을 나오시면서도 뒤를 몇번이나 돌아보시던 장인어른의 못내 아쉬운 표정이 눈에 선하고
그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 내가 시집을 세번 같어도 오빠 정은 못 잊고 살았소 "

김경렬 2018-01-03 10:56	영화같은 실제상황, 감동의 드라마한편 감상한것 같습니다. 사위도리를 다하시고 효도도 멋지게 하셨습니다. 감동입니다.

김검호 2018-01-04 15:14	ㅎㅎ 장모님께는 불효인듯 합니다

하동댁 울 엄니

토끼와 하모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