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검호
ㆍ작성일	2018-01-02 17:38

ㆍIP: 223.xxx.160

상아의 노래

내 위로 다섯살 더 많은 형이 있었지만 나는 윗 마을에 사는 상수형을 더 좋아했다
홀어머니와 함께 이장네 행랑채에 살면서 그 집 머슴으로 일했는데 계절마다 하는 일이 달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형이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냅다 달려가서 주변을 서성이며 놀았는데
이런 나를 형은 끔직이도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또랑에서 가재도 잡아주고 대봉 홍시를 따 뒀다가
슬며시 건네 주기도하고 비바람 불 때면 자전거로 등하교를 시켜 주기도 했다
여름 방학 때면 당산나무 그늘에 앉아서 낡고 허름한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형이 왜 그리도 멋져 보이던지...

그 때 형이 자주 부르던 노래가 상아의 노래였는데
중학교도 못다닌 형이 이런 노래를 언제 다 배웠는지
또 기타는 누구한테 배웠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물어보면
"다 후루꾸제 배우긴 어데서 배왔겠노"하면서 크게 웃어 넘겠다
주로 송창식.나훈아.남진 이런 가수들의 노래를 잘 불렀는데 어딘가 한이 서린 그런 처절함이 배어 있었다
이장 집 둘째 딸 민숙이 누나는 읍내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고생이었는데 공부를 잘해서 온 동네가 칭찬이 자자하고 곧 교대를 가서 선생이 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웃 동네 형들이 뒤를 졸졸 따라 다녔는데 이장님이
서슬퍼런 호랭이 같은 분이라서 쉽게 접근을 못하고
늘 주변만 서성거렸다

국민학교 동창인 상수형도 좋아하는 눈치였는데
워낙 처한 형편이 차이가 나다보니
오가다 안부나 눈 인사나 하는 정도었고 속 마음을 내 비치지는 못하는 처지였다
같은 집에 살지만 주인집 딸과 머슴 사이였으니 오즉할까 어린 맘에도 이해가 되었다
갈래머리에 하얀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누나를 볼 때면
어린 나도 맘이 싱숭생숭했던 것 같다

누나는 예정대로 교대로 진학해서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고 토요일에나 가끔 오더니 점점 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상수형은 당산나무 아래 너럭바위에 앉아 한참을 기타치며 노래하다가도 혼잣말 처럼 중얼거렸다
"더러분 세상 칵 뒈져불까"
그러다 길게 한숨을 내 쉬기도했다
어려서 왼쪽 눈을 다친 형은 제때 치료를 못해서 거의 안보였는데 학벌도 없는 데다가 이런 몸으로 도시에 나가 취직도 안되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했던 것 같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서 나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고있었고 민숙이 누나는 횡천 쪽으로 교사 발령을
받아 가더니 얼마 안가서 한약방 하는 남자하고 결혼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끔 추석 때 고향에 가면 상수형은 수염도 안 깎고 늘 덥수룩한 얼굴에 당산나무에 기대어 막걸리를 마시거나 기타를 치면서 멀리 신작로를 내다보고 있었다
민숙이 누나 일행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얼른 일어나서 뒷산으로 도망치 듯 숨어버렸다

내가 23살 되던 추석 전날 우리동네는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온 동네가 어수선하고 침울해서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상수형은 섬진강으로 숭어를 낚으러 간다고 나간 날 밤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네 청년들이 후래쉬를 들고 찾아 나섰는데
자주 가는 낚시터 바위에는 농약병이 놓여있었고
형은 추석 뒷날 비석거리 아래 섬진강에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퉁퉁 불어서 얼굴을 못알아 볼 지경이었는데
늘 입고 다니던 옷가지를 보고 확인이 되었다
추석을 쇠러 고향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도 상수형의 죽음을 보게된 나는 세상살이가 허무하게 느껴져서
한 동안 맘을 못잡고 살았었다

반백이 되어 고향 집에 와 보니 늙은 당산나무는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건만
상수형의 한 맺힌 기타소리도 노래소리도 그친지 오래이고
말 없는 섬진강 물만 무심히 흘러가고있다.

김경렬 2018-01-03 06:36	상아의 노래/ 한달음에 재미있게 배독하였습니다. 쪽머리를 갈래머리로 오직을 오즉으로 수정하시면 더 멋진 수필이 되겠습니다. 상수형의 죽음으로 작가님 상심이 크셨습니다. 당산 나무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겨주는 고향 ! 감회가 새로우셨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안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2018-01-03 16:23	김검호 작가님~~~ '상아의 노래' 단숨에 배독하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 마을에서 보았던 어떤 경우와 흡사하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상수형의 선택에 안타깝지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지금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얼마든지 차선이라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늦은 인사지만 명복을 빌어드립니다.

김검호 2018-01-04 15:05	김경렬 작가님의 소중한 지도 감사합니다 수정하고 보니 더 의미가 확실해 졌습니다 무술년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빕니다

김검호 2018-01-04 15:07	이석희 선배님 저도 그 시절 그때를 생각하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참 아깝기 그지 없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일입니다

정찬열 2018-01-05 20:36	김건호작가님 "상아의 노래" 상수형을 좋아하는 작가님이기에 고향에가면 더욱 뇌리에 떠나지 않겠습니다. 비록 죽음이라는 불행을 선택했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을 감동으로 단숨에 배독했습니다. 무술년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시길 빕니다.

김검호 2018-01-06 08:38	정찬열 선배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백낙은 2018-01-06 10:32	김검호 작가님. 수필분과 위원회 위원장 백낙은입니다. 수필 작가로 등단하심을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심사평을 쓰느라 며칠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다음에 음미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수필서재 개설도 축하합니다. 평안을 기원드립니다.

김검호 2018-01-06 16:38	위원장님 노고가 많으십니다 무술년 한해도 건강하셔서 문우님들께 큰 길잡이가 되어 주시길 빕니다

김상훈 2019-01-01 21:44	김검호 작가님, 1년을 넘게 비운 작가 서재에 들어와 새해인사드립니다. 건강은 필수, 원하는 소망도 필수인 만큼 건강을 필두로 올해는 소망 한 가지라도 꼭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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