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찬경
ㆍ작성일	2018-06-17 09:13

ㆍIP: 14.xxx.196

시골버스 속 댕기머리 여학생

시골버스 속 댕기 머리 여학생/ 정찬경

한적한 공원이나 산새 소리 들리는 산책길을 걸어가는 노부부를 본다.
손을 꼭 잡고 또 한 손에는 지팡이 집고 삶에 경건함을 느끼는 노부부
연세가 80세 중반은 넘어 보인다
처음 만난 사연을 각자 소설처럼 간직하고, 아이들도 많이 낳아 키웠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주역이었던 세대, 이제 추억만이 노부부 영혼에 남아서
서로 감사하며 살아간다. 한날한시에 눈 감기를 소원하지만,
황혼의 사랑만큼 운명이 따라 줄지는 미지수이다.

1970년대 먼지 일어 나는 시골길을 운행하는 버스는 매우 덜컹거렸다.
보통 하루 3~4회 운행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사람들은 읍내를 왕래하는 사람들이다
마을 정류장에는 고모. 당숙. 이모, 이웃사촌들 다 만날 수 있고,
도시로 돈 벌러 간 아들, 시집간 딸 사위 이야기, 강아지 새끼 낳은 것,
누구 결혼 날짜 잡은 것, 마을 사람 개인 정보가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닌다
버스가 들어오기 전에는 20리 길을 모두 걸어서 읍내에 다녔으나 버스가 운행하기
시작한 것은 새마을운동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이다
호롱불 쓰던 방에 전기가 들어오고, 초가집이 슬레이트와 기와지붕으로 바뀌고,
마을 길을 넓혀 시골에도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70년대 초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근면• 자조• 협동 이념 아래
정신개발, 소득증대, 환경개선 사업이었다
읍내에 가려면 현금 대신 삼베 달걀 농작물 닭 강아지 이런 것들을 팔아서
그 돈으로 생필품을 샀다.
큰돈이 필요할 땐 소 돼지를 팔거나 몇 가마 쌀을 달구지에 실려 보내야 했다

40년 전 어느 날 시골 소읍에서 버스를 타게 되었다
그 날은 장날이어서 그런지 어르신들이 많았고
버스 바닥에는 짐 보따리들이 많이 놓여있었다.
우리 일행은 지도 교수님과 대학생 6명이 교련 복장에 베레모를 쓰고 있었다
우리가 농촌 마을을 내려간 목적은 전국 새마을 운동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한 자료수집 활동이었다 그때 대학교 2학년으로 농촌 봉사 활동도 하고 지역사회개발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근로 학생이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도 몸이 몹시 흔들거렸는데 바로 옆에서 어떤 여학생 목소리가 들렸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머리를 양 갈래 따서 묶은 댕기 머리 여학생
“오빠들 어디 가셔요”
“성산리 가는데“
“성산리는 왜 가시는데요”
옆에 다른 학생들도 있었는데 성질 급한 내가 먼저 고개를 돌려 대답을 했다,
“농촌조사 하러 가는데, 농촌 새마을 운동이 성공한 마을과 낙후된 마을에 대하여 조사하러”
“아 우리 동네도 조사 하나요 ”
“마을 이름이 무엇인데 ”
“화산리‘요”
“화산 마을은 계획이 없는데, 성산리에서 멀리 있나?”
“한 정류장 더 가야 해요”
“여름 방학 때 농촌 봉사 활동도 하는 데 화산리에 필요할까?”
“우리 동네도 봉사 활동해주면 좋지요”
현장 답사를 위해서 화산 마을을 안내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긍정적인 답을 했고 여학생은 우리가 조사할 마을에서 같이 하차했다.
지도 교수님께 여학생 사연을 말씀드리고 화산 마을에 다녀오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여학생과 시골길을 걸어가면서 마을에 대하여 질문을 했고 개인 신상도 물어보았다

길가에 먼지를 뒤집어쓴 들꽃, 벼 이삭 사이로 뛰어드는 청개구리,
우리를 엄호하는 잠자리가 나는 시골길이지만
뜨거운 햇살 속에 초행길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여학생은 청주에 있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친척 집에서
학교에 다니는데 방학이라 시골집에 가는 길이라 했다
대학교 진학을 하느냐고 물었으나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름 주소를 적었고 농촌봉사 활동 이야기,
우리 다음 새마을 운동 조사 계획도 이야기해주었다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학생에 감사하고 나중에 조사 활동 마치면
엽서를 보내도 되느냐고 물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있으면 보내 주세요”

화산리 마을은 산속 깊이 있었다. 마을에 들어가려면 마을 입구 깔딱
고개를 넘어야 했고, 비포장도로 황톳길은 낮에도 혼자 넘기엔
한적하고 으슥한 산모퉁이를 지나야 했다

문명이 차단된 깊은 산속 마을에서 도시에 나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신선하고 참나리 꽃이나 원추리 꽃 같다고 생각했다
성산리에서 화산까지 거리가 약 3km 느린 걸음으로 1시간
소요되고 초행길이라 더 멀리 느껴졌다. 마을 이장님 새마을 지도자님을 만나
농촌 문제에 대하여 대화하고 앙케트 조사도 했다

근대화와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농촌은 도시로 급속한 인구 이동과
소득감소 문제가 있었고, 이장, 새마을 지도자 자질 향상이
그 마을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새마을운동 성패는 마을 위치, 도로여건, 주민들 능동적 참여,
새마을 지도자의 지도 역량이 좌우하였다.
마을 지도자들이 대학생 노력, 의료, 교육, 봉사 활동을 요청하여
다음 해 검토해보겠다고 약속했으나, 내가 입대로 인하여 추진하지를 못했다

농촌 현장을 다니면서 어르신들 마을 이장 지도자들과 대화 하다 보면
우리가 배운 것도 많았고 새마을 운동은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전라북도 남원에 도착 광한루에서 화산리 댕기 머리 여학생에게
춘향 그림엽서를 보내면서 동생이 되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에 농촌 조사 자료 처리를 완료하여
농촌 새마을 운동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농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하여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며
전문학교에 지역사회개발 학과를 신설, 농기계나 농업 기술 및 지도력을 교육하여
농촌 사회에 배출하자는 논지였으며,
얼마 후 일부 전문학교에 지역사회개발 학과가 신설되었다

시골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여학생을 가을 낙엽이 예쁘게 옷을 갈아입을 때
서울로 초청해서 남산과 어린이 공원도 구경시켜주고
영화 “진짜 진짜 좋아해”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눈이 펄펄 내리는 그해 겨울 12월에 입대를 하였다.
3년을 기다려 달라는 내 요청이 무리한 건의 사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많은 세월이 지난 후였다

제대할 때까지 날 기다려 준다면 푸른 잔디가 깔린 초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백일홍 나무를 심어 그네를 매달고 태워 주어야겠다 결심을 하였다.
20세에 만난 댕기 머리 시골 여학생과 1개월마다 오고 가는 군사 우편으로 대화하였지만,
항상 인생에 희망으로 남았고, 보초 근무 때는 보름달 속에서 날 보고 웃어주고,
건강한 군 복무를 잘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군복을 입고 철길을 걸으면서 코스모스를 꺾어 머리에 얹어 줄 때,
군인 오빠 무엇이 먹고 싶나요? 반달 빵, 그래요.
시골 상점에서 반달 빵 5개를 사주어서 단숨에 먹어 치웠다
봄날에는 부대 부근 논밭에 나가 봄나물을 같이 채취하여 식
당에 절반 주어 조리를 부탁하고, 절반은 집에 가져가도록 했다,
젊은 날 추억은 항상 아름답고 사람 마음을 정결케 한다,
우리가 100세가 넘어도 변하지 않을 추억이다
3년 후에는 예비군복을 입고 제대하는 나를 성북역에서 기다려준
그 여학생은 긴 생머리가 휘날리고 가냘픈 개미허리를 가진
혼기 닥친 너무 예쁜 숙녀가 되어 있었다.

김경렬

2018-06-17 22:41

옛날을 회상하게 해준 시골버스 속의 댕기머리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자주 서재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정찬경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나 늙어지면 아련한 추억들이 그리워 집니다 혼자만의 추억에 바다에서 나와 작품으로 전시했으면 어떨지요 건강하시고 좋은 가르침 자주 주십시요	6/18 08:23

정찬열 2018-06-20 19:29	정찬경작가님~! 지난날의 추억이 흥건한 "시골버스 속 댕기 머리 여학생" 반세기가 넘어도 달아나지 않는 邂逅 추억어린글 감사히 헤아려 보고 갑니다.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 항상 편안하시고 행복하세요^*^

정찬경 2018-06-21 12:50	정찬열 이사님 6월 행사장에서 건강하신 모습을 친견하고 반가웠습니다 짧은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항상 집안 어르신으로 든든한 마음 배려깊으신 사랑 감사합니다 한국 문학에 큰 거목이 되시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가르침을 주십시요

시민혁명

재난예방은 우리 일상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