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휘봉
ㆍ작성일	2018-06-17 10:49

ㆍIP: 220.xxx.154

경포대의 달

※일찌감치 서재를 개설하고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제서야 글을 올리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경포대의 달(신인문학상 수상작)

정휘봉

일을 좆아 고향을 떠나 강원도 강릉에 자리잡은 지 어느덧 석 달째, 삭풍이 몰아치던 겨울 추위도 남녘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밀려 차츰 북쪽 땅으로 밀려가고, 숙소인 펜션 앞마당엔 매화 꽃잎이 하나둘 앙증맞은 봉우리를 터트리고 있다. 아직 완연한 봄이라고 하기엔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꽤 쌀쌀하기도 하고, 휴일 없이 이어지는 강도 높은 작업에 몸은 비록 피곤하지만, 마음은 불어오는 봄바람에 정분이라도 난 듯이 마냥 설레기만 한다. 작업을 마친 후 허기에 주린 배를 채우고 숙소에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어 보지만,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드는 봄바람에 향긋한 꽃냄새가 실려 와 코끝을 자극하니 하얀 매화 꽃잎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이렇듯 꽃향기 품은 바람이 상쾌한 봄날 저녁에 사내들 냄새나는 방안에만 누워 있기엔 너무나 아쉬운 마음에 봄바람이나 쐴 요량으로 무턱대고 혼자 길을 나섰다. 해는 저물어 가고 내일 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멀리 가지는 못하고 숙소에서 가까운 경포대로 향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의 추억을 되새기며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 선 경포호수는 입구부터 내 기대와는 사뭇 달라 있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던 송림이 간곳없이 사라진 자리에 빼곡히 들어선 야시장엔 이른 시간임에도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걸음과 실랑이 소리가 어지럽다. 취객들의 실랑이 소리를 뒤로하고 도착한 경포대가 위치한 언덕 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니 거기도 역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송림이 우거졌던 자리엔 펜션과 음식점들이 들어 서있어 소나무 그늘에서 도시락을 먹던 추억 속의 소나무는 말 그대로 추억 속에서만 남아 있었다.

씁쓸한 기분을 애써 달래며 경포대로 향하는 아트막한 언덕길을 발걸음을 세며 유유자적 홀로 걷다 보니, 노송의 늘어진 가지 사이로 고색이 창연한 누각의 모습이 비친다. 비탈진 언덕길을 따라 몇 걸음 더 옮기니 해서체로 쓴 경포대 현판이 낯선 길손을 반겨 맞는다. 경포대 누각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경포호수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모습 또한 마음속에 품어 왔던 서른 몇 해 전에 보았던 그 풍경이 아닌 아주 낯선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흙먼지 날리던 흙길이 아스팔트로 말끔하게 포장된 것이야 변화하는 세테에 따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호수 건너편 오랜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닦여진 산책로는 너르고 반듯하게 새로이 닦여져 있지만, 생태공원 조성이라는 미명하에 수천 년 간직해 온 자연을 마구 파헤쳐 놓고 애써 다시 다듬어 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연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자연의 파괴는 아닌지, 이 모든 것이 편리함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은 아니지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급변하는 세상에 강산은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고, 옛 임의 정취와 풍류가 깃든 누각만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홀로 옛 모습을 지키려 애쓰고 있는 듯해서 보는 이의 가슴이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나 또한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고 그 편리함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으니 딱히 누구를 꼬집어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없지 않지만 경포대에서 맞는 달빛이 그리도 곱다 하였으니 달구경을 마저 하기로 하고 아직은 쌀쌀한 저녁의 한기도 달랠 겸 시장기 도는 배도 채울 겸 가까운 식당을 찾아 따뜻한 국물을 마주하니 반주 생각이 간절하여 소주 한 병을 청하여 마시니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다. 배도 부르고 취기가 얼큰하여 한결 가벼워진 걸음으로 경포대에 다시 오르니 어느새 밝은 달이 경포호수 위에 둥실 떠 있었다.

옛 임이 이르기를 경포대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하였으나, 마주 앉아 바라볼 임이 곁에 없으니 임의 눈동자에 비친 달은 찾을 수 없고, 술잔 들어 권할 벗은 멀리 있으니 술잔 속에 비친다던 달 또한 찾아볼 방도가 없다. 경포 해변에 비친다던 달은 높이 솟은 건물에 가려 송림 너머 바닷가 풍경조차 보이지도 않고, 경포호수 흐린 물에 내려앉은 달빛은 불야성을 이룬 도심의 불빛에 스러져버렸다. 이제 하나 남은 하늘에 뜬 달빛에 마지막 기대를 하였으나 누각을 비추는 강한 조명은 고고하면서도 고느적하게 비추는 달빛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 나의 기대를 여지없이 짓밟아 버렸다.

이곳을 스쳐간 수 많은 시인 묵객들이 경포대 달빛의 아름다움에 취해 시를 읊조리던 그때엔 인공적인 밝은 불빛이 필요하지 않았으리라. 자연은 순수한 본연의 모습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밝으면 밝은대로,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면 좋을 터인데, 대낮같이 밝은 조명이 꼭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밝음 속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욕망에 눈이 멀어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은 점차 잃어가고 있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소중한 자연과 유산을 고이 간직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자손 대대 후손된 도리이자 후손에 대한 의무가 아닌지 우리 모두 돌이켜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박남숙

2018-06-17 11:18

`정휘봉`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정휘봉 시인님~~^^

자연이 주는 순수의
경포호수의 내려 앉은 달빛
직접 보면 취할것 같은 느낌입니다

고운 글 배독하고 갑니다
늘 향필하시고 건안하시길 바랍니다~^^


정휘봉	박남숙 시인님,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수백년 지켜온 문화유산이 점차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그 안타까움을 표현하고자 하였으나 필력이 딸려 오롯이 표현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6/17 11:36

김경렬

2018-06-17 22:51

정휘봉 작가님!
반갑습니다.
경포대의 달/
정성으로 올리신글이
당선작입니다.
좋은글 양산하시고 문운이 빛나시기를 빕니다.


정휘봉	김경렬 작가님, 소중한 걸음에 감사드립니다. 아직은 필력이 미치지 못해 부족함이 많은 글입니다. 작가님의 응원에 힘입어 좋을 글 쓸수있는 작가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름철 무더위 건강에 유의하시고 늘 건안하시길 바랍니다.	6/18 16:22

정찬열 2018-06-20 19:45	정휘봉작가님~!반갑습니다 신인문학 작가상으로 올리신"경포대 의 달"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왠지 제마음도 서글퍼지네요 내마음속에 지워지지 않은 경포대의 해변을 감싸는 해송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하니말입니다. 각지자체들의 무분별한 난공사가 어쩌면 지켜내야할 역사를 헤치고 있는 안타까움 말입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속에 항상 건안 하시고 승필을 기원 드립니다.

백낙은 2018-06-24 21:57	정휘봉 작가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가 심사평을 쓴 작품이라 몇 번이고 읽은 글입니다. 그리고 오랫만에 뵙는지라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 훌훌 털어 버리시고 창작에 몰두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멋진 옥동자 출산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50년 동안 전하지 못한 선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