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유리
ㆍ작성일	2018-02-26 16:35

ㆍIP: 211.xxx.6

봄이면 피어나시는 아버님
봄이면 피어나시는 아버님 / 이유리

입춘이 지났지만 매서운 칼바람을 휘두르는 겨울이다. 그렇지만 절기상 입춘이 지났으니 마음에서 봄이 오는 것인지
햇살에도 바람에도 봄 향기가 간간이 묻어나 마음을 두드려댄다. 해마다 꽃피고 봄바람이 불어오면 그리운 얼굴이
찾아오신다. 다름 아닌 시 아버님이시다. 몇 해 전 시아버님 장례식 치르고 돌아오던 길가에 활짝 웃고 있던 노란 개나리가
아름답던 계절, 시리고 텅 빈 마음에 활짝 핀 봄꽃 향기를 돌아가신 시아버지 마음인 양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봄날을 잊을 수 없다.

봄은 시아버님과 영영 이별한 계절이다. 시아버님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 신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장남이며 맏며느리로
주말마다, 시댁으로 병원으로 남편과 함께 출근했던 시간, 사업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나한테 맡기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예약된 날짜에 맞추어 충남대 병원을 모시고 다니던 날들이 꼬박 2년 반, 암 병동에서의 지루한 생활 세상에는
아픈 사람들로만 가득했다. 병마와 사투하는 병자들의 마음은 어떠하랴. 그 사투하는 인간의 노력을 병원 문병을
다니면서 조금씩은 이해가 될 듯싶었다. 평소 가족들이 잠깐씩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갔었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삶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들, 난 그동안 내가 가진 행복에 도취해
살고 있었음을 감사히 생각하게 되었다.

병마와 사투하느라 앙상하게 야위어 가시는 아버님 모습과 함께 남편도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난 이중의 아픔과 고통을 느껴야 했다. 암이란 병이 진행될수록 온몸이 시커멓게 변해간다는 것을 아버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뼈만 앙상하게 남는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언젠가 아버님께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던 기억이 있다. 26년 전, 큰딸을 출산하던 날이다. 손이 먼저 나온다는 의사의 말에 황급하게 제왕절개를
하고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모유 수유하면 가슴도 쳐지고 몸매도 망가질 거 라는 평소의 생각 때문에 나는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젖을 말리는 주사를 남편도 모르게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나중에 알게 된 남편의 그 실망하던
눈빛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3대 독자 아버님에 남편이 장남인 나로서는 아들이 아닌 딸을 임신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늘 불편했다. 무거운 몸으로 차로 20분 거리의 시댁에 한 번씩 들릴 때마다 첫 친손주를 기다리시던 아버님, 이미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지만 개의치 않으시며 순산하기만을 기도해주셨다. 출산 소식을 듣고 가게 문을 닫으시고
병원을 찾으신 부모님 젖을 물리지 않고 분유 병을 물리던 모습을 보신 아버님의 그 차갑게 식어버리신 표정과 말투,
첫 손주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가득 안고 오셨다면서
"어찌 너 생각만 하고 아이 건강은 생각 않느냐"며 정말 눈물이 줄줄 나도록 혼을 내셨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얼마나
울었던지 퉁퉁 부은 눈으로 젖병을 물리면서 내 이기심과 어리석음을 생각해 보았다.
"다시는 너 안 본다"던 아버님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정말 한 순간도 나와 눈을 맞추지 않고 아이만 보고 가셨다.
"불쌍한 우리 손주"만을 연발하시면서, 퇴원하고도 차로 20분 거리의 우리 집을 하루가 멀다고 오셨지만, 역시 내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면서도 아이를 안고 늘 기도하시면서 내 기도는 잊지 않고 꼭 해주셨다. 모유 수유가 산모의
몸 회복에도 더 빠르고 아이에게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미처 생각지 않고 단순하게만 잘못 생각했던 나는 정말 그 대가를
호되게 치렀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앉아보라시던, 아버님 앞에 죄인처럼 앉은 나, 나에 대한 실망과 아쉬움의 시간을
쭉 얘기하실 때, 나는 죄송한 마음에 또 한 번 눈물을 줄줄 흘려야 했다. 유아기에 잦은 병치레를 할 때마다 모유를
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늘 수현이한테 미안했었다. 출산의 기쁨과 동시에 이런 일로 눈물을 뺐던 산모가 또 있을까?
둘째 수민이는 당연히 모유를 먹였고, 덕분에 아버님의 인자하신 미소를 듬뿍 받을 수 있었다.

첫친손주라는 이유로 정말 원 없이 사랑받은 것을 아는 큰딸 수현이는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날, 남편 다음으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눈물로 기도하시던 어머님 함께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지인과 가족들 평소에 신앙이
몸에 배셨기 때문일까! 부활절 새벽에 운명하셨다. 항시 대기하고 있던 남편 전화가 새벽 고요를 깰 때의 그 가슴 덜컥
내려앉음이란 경험 없이는 아무도 모르리라.
오랜 연애와 지금까지의 결혼생활에서 남편의 눈물을 난 그때 처음 보았다. 정말 아픔과 슬픔이 목젖까지 차오른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싶을 만큼 꺼억꺼억 울었다. 부모한테 잘해야 우리 아이들이 복을 받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남편이 미울 때도 많았기 때문에 싸울 때도 있었다. 부모님 앞에 가면 늘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편히 앉으라는 말씀을
듣고서야 자세를 고치며 살아왔을 만큼 아버님은 곧은 모습만을 평생 보이셨기에 자식들에게도 늘 그런 대접을
받으신 세월이었다.

해마다 어머님이 김장을 해주시면 차에 싣고 아파트까지 갖다 주셨던 아버님
늘 '큰애야 큰애야' 유난히 많이 받았던 사랑만큼 주체할 수 없었던 눈물 결국은 한 줌의 재로 남겨짐을 보고
'삶이 이렇게 허무한 거구나, 절실히 느꼈던 시간이었다. 삼우제를 마치고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게 끙끙 앓는 나를
보고 남편은 또 뭔 일 겪을까 내심 걱정했다며, 놀란 가슴 쓸어내렸다지, 링거를 맞고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며칠 사이 봄은 이미 짙은 향기로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도 남녀 간의 사랑도 모두 곁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른다. 지나고 나서야 떠나고 나서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 아낌없이 사랑하고 무엇이든 내일로,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동서네랑 부모님 모시고 여행 한번 하자던 약속이 미루고 미루어지더니 결국은 지켜지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가슴 치도록 후회스럽다. 아버님께 넘치도록 받았던 사랑을 아직은 곁에 계시는 어머님께 대신
돌려드려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얼마나 어머님 마음에 드는 며느리인지는 나도 모른다. 올해 아니 해마다 봄이 오면
아버님이 돌아가신 계절 그날처럼, 활짝 웃는 개나리꽃이 가슴 가득 들어오겠지. 마치 아버님의 모습과 아버님의
자상한 인품처럼, 봄이면 화사하고 향기롭게 내 가슴을 흔들며 봄이면 피어나시는 아버님이시다.

백낙은 2018-02-26 20:22	이유리 작가님. 오랫만에 뵈오니 더욱 반갑습니다. 화사한 봄날이 시아버님과 이별한 계절이시군요. 그래도 그 아픈 추억이 화사한 봄꽃으로 피어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시 아버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그리움 우리 세대에 큰 귀감이 되리라 여깁니다. 부모님 모시고 여행 한번 하자던 약속 시 어머님과 꼭 이루시고 친정 부모님께도 후회없는 효도하세요. 감사합니다. 건필하시고 승리하소서.

김경렬 2018-02-28 09:25	반갑습니다. 이유리 작가님! 봄날 에 천상으로 떠나신 아버님을 그리는 예쁜 며느님의 깊은 사랑을 하늘에 계신 아버님도 흐믓해 하시겠습니다. 좋은글 자주 올려 주시고 건안건필 하시기 바랍니다.

정찬열 2018-02-28 15:23	작가서재에서 오랜만에 뵙는듯 싶네요 부모님 앞에 가면 늘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편히 앉으라는 말씀을듣고서야 자세를 고치며 살아왔을 만큼 아버님은 곧은 모습만을 평생 보이셨기에 자식들에게도 늘 그런 대접을 받으신 세월이었다. 라는 대목에서 불쑥 새각난 글이 있어서요 "삶의 진리" 오늘 내가 빈천 하거든 베플지 않았음을 알아야 하고 자식이 나를 돌보지 않으면 내부모를 내가 편히 모시지 않았음을 알아야한다.상대방은 내 거울이니....,! 부모와 가족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신 좋은글 잘 정독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때로는 미련이 앞서고후회가 뒷따르는 것을 우리는 종종 부딛치며 살아가고 경험 하는 것이니깐요 감사합니다. 늘 건안 승필 하시길 기원 합니다.

가혜자 2018-12-11 23:27	언제나 반짝반짝 샛별로 제 가슴에 뜨는 별 이유리 시인님! 큰며느리로 시아버님께 사람받으셨던 그 사랑 ... 어쩌면 저와 맣이도 닮았을까요 그러시던 시아버님이 아프셔서 누워계시는 모습을 차마 뵙기가 ... 고운모습처럼 곱고 아름다운 글에 머물다 갑니다 시인님! 늘 향필하시고 또 뵙기를 설레이며 기다립니다!!

김상훈 2019-01-01 21:52	이유리 작가님, 1년을 넘게 비운 작가 서재에 들어와 새해인사드립니다. 건강은 필수, 원하는 소망도 필수인 만큼 건강을 필두로 올해는 소망 한 가지라도 꼭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립니다.

정대수 2020-06-11 15:19	이유리 작가님 안녕하세요. 시아버님께서 암으로 모진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개나리 꽃필때 하늘나라로 가셨군요. 아프신분도 그렇지만 곁에있는 가족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작가님을 그토록 애지중지 하셨는데 슬픔이 커셨겠습니다. 시어머님께서 계시니 효도의 기회는 있습니다. 따뜻하고 감동적인 작품에 머물고 가면서 인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아직도 비상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시고 행복한 6월 되시기 바랍니다.^^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