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올 여름이 너무 뜨거워 그렇게 미워했었던 계절도 지금 생각해보면 여름은 나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항상 겪고 있는 그 자리가 아프고 힘들었을 뿐인 것을.

나에게 연인과도 같은 가을이 오는 것 같다, 아니 왔을 것 같다. 조금 이른가 들판의 황금 물결은 아직 준비가 덜 된 나의 마음과도 같은가 보다. 오늘 아침에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얼굴을 간지르는 갈바람은 언제인가 싶은 탈콤한 입맞춤으로 다가온다. 나 자신만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챙겨 본다. 저 쪽에는 다라가 불편한 사람이 아주 빠른 속도로, 나의 자전거를 휙 지나간다. 저 사람은 내가 가을을 기다리듯이 자신과의 싸움을 얼마나 기다리며 이겨 왔을까. 다리를 다친 그 다음에는 걷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위의 눈빛은 보며 밖으로 나가기도 싫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가을 하늘을 바라다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나의 길인가하고, 또 하늘에 물어 보기도 했을 것이다. 차츰, 오르막, 내리막길은 달팽이 가듯 내딛기 시작 했을 것이다. 차츰, 나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이 세상에는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더 악물고 걷고, 걷고 또 걷는 연습을 했을 것이다. 이제 걷는 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게 되었고 옛날처럼 뛰어 보면 어떨까하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얼마나 스스로를 뒤돌아보며 자신에게 미안했겠는가.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얼마나 비관을 했었을까하는 부끄러움도 느꼈을 것이다. 참 잘 달린다. 나도 마라톤을 좋아한다. 마라톤에 참가한 메달이 몇 개나 연구실에 걸려 있다. 그 사람의 달리기 속도를 알 수 있다. 지금은 내가 따라가지 못할 속도임에는 틀림없다. 가을을 맞으면서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나도 다음 주부터 일요일 아침에는 마라톤을 해야겠다. 자전거로 다가오는 갈바람을 맞는 것 보다는 직접 헉헉거리며 다정한 갈바람의 숨소리를 함께하고 싶어서이다.

가을 햇살은 곱게도 어루만져 준다. 아직 조금 따갑기는 하지만 들풀과 나무들 사이로 다가오는 마음은 내가 이 세상을 너무 멋없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연의 가르침을 개인 과외로 값비싸게 받아들여 되돌려 풀어 놓지 못하는 그럼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 언젠가 받은 것은 돌려주어야지, 그런 때가 올거야 하며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온 삶은 비로소 자전거를 타고 숨을 늦게 들이쉬면서 푸근함을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삶이 개울에 비춰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참 많은 준비를 하고 산다. 그러고 보니 사는 것은 준비의 연속이며 준비하기 위해 태어 난 것 같으다.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야하고, 뜨거운 사랑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하며, 집을 구하기 위해서도 준비하고,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하고, 여름, 겨울을 맞은 준비를 하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이토록 많은 준비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가하는 것은 좀 생각해 봐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준비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왜 사는가를 조금 생각해보면 더 잘 살기 위해서 사는가, 만족하기 위해 사는가 많은 경우가 있을 것 같다. 모두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결론을 낼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라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행복이란 어떨까,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닐까?

오늘 자전거로 동네를 돌아보면서 과장되지 않은 자연, 얼마나 고고한가를 보면서 자전거 페달을 지치게 밟는 것보다는 느슨히 주위와 함께하며 둘러보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사실은 내 나름대로 가을 마중을 할까하고 나가 보았는데 머리에 툭 떠오르는 것은, 아! 그렇게도 소중한 것을 기다리는 데에는 그다지 준비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냥 함께하기로 했다. 조금은 놓치는 것이 있더라도 어울려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