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귀가 길엔 술 생각이 난다. 그것도 금요일 저녁이면 일주일 동안 힘든 세포들이 영양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요구하고 있다. 스트레스엔 몸을 채우는 영양보다는 잊고 싶고 풀고 싶은 것이 어쩜 나의 마음과 닮아서 일지 모르겠다.

일 년을 정리하는 가을도 내 세포와 같이 그러한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는 애타고 고된 일을 겪으면서 나보다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왔을 것이다. 이것이 나와 가을의 차이 일 것이다. 조금만 답답한 일이 생겨도 주체 못하는 나의 심성과 수없는 세월을 지나치면서 아파왔던 시간을 말하지 않고 견뎌온 가을은 그 심지의 크기가 다르다.

그래도 내가 가을보다는 자신 있게 잘한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술 마시는 일일 것 같다. 술을 진탕 먹여 놓고 가을의 진심을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왜 너는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조용히 좀 있을 수 없느냐고. 내가 가을에 반하는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 짓고 쓰다듬어 주며 가녀름한 귓속말로 해 주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반하지 않을 수 없지만 한 번씩 스치는 달콤한 말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게 만든다.

그래서 술을 먹여 보고 싶다. 나보다 잘 취할지, 아니면 말로 마셔도 변화가 없는지, 고민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님은 있는지, 어떻게 만나 무엇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지.

술에 취하면 나처럼 엉거주춤하게 춤추는 모습도 멋있을 것 같고, 약간 흔들어 대는 머리도 너무 인간적일 것 같다. 내가 취하면 달님도 출렁거리는데, 너가 취하면 무엇이 너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줄지도 궁금하다.

이제 너는 마지막 차를 기다리는 나와 같이 억지로라도 떠나가야 할 때가 되어간다. 나는 마지막 버스를 놓칠까봐 동료들에게 간다는 소리도 못하고 빠져 나오는 일이 많은데, 너는 곱게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겠냐. 거짓말이라도 더 빨리 다가오기 위해서 지금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면서.

그래, 보통은 떠나갈 때 아쉬워서 소주한잔은 하고 가지.

너도 어떠냐, 오늘 하루 시간을 정지 시키고 한번 마셔 보자고.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하지만, 너는 서 있는 곳이 모두 너의 집이기에 술을 많이 마셨다고 훅훅 불지는 않을 것 아니냐. 같이 마시면서 너의 철학에 대해서도 말해주고, 왜 사람들은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해서도 강의를 좀 해주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왜 그리도 빨리 하늘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아무래도 선이 악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주라. 이왕 술 사는거, 기분 좋게 내가 쏘마.

계절이 변하듯 사람도 바뀌면 더 좋아지는 거냐, 더 나빠지는 거냐. 아마도 사람의 일에는 관여하기 싫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너의 객관적인 이야기를 밤새도록 듣고 싶다. 그러다 내가 그 자리에서 잠이 들면 애처러이 보이지 않도록 곱게 물든 낙엽으로 덮어주고 가다오.

너도 취한 기색을 보이지 싫거든 너 대신에 출렁거리는 저 달을 나무래 봐라. 그래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너무 고맙고, 기다릴 시간을 주는 너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서럽지 않도록 술은 너무 마시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