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여태까지는 출근할 때 떠오르는 해를 맞이할 수 없었다. 실제로는 해가 뜬 후에 출근을 했기 때문에 해가 어디쯤에 있는지 생각도 없었다. 어떤 때는 밝을 때 퇴근을 하기도 한 기억이 있는데 요즈음은 가로등 불빛이 눈에 들어 와야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고 인지한다.

살아 오면서 나를 제외한 그 어느 무엇에도 신경을 쓸 틈이 없이 살아왔나 보다. 청년기는 너무 바빠 해의 위치를 몰랐고, 장년기는 해오는 일에 뿌리를 내리기 위하여 뛰었고, 장년기가 되니깐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하여 무든 애를 쓰며 달려왔던 것 같다. 누구라도 다 그러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끓어오르던 열정이 식어 가는지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달도, 별도 보고, 해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확인하고 싶어진다. 오늘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빌딩 숲을 살짝 벗어나니 저기 육교 위로 갓 세수한 붉고도 깨끗한 얼굴이 운전대에 바로 꽂힌다. 어제도, 그제께도 같은 길을 다녔는데 참 오늘 아침에만 이런 찬란한 빛이 나의 시야에 들어오다니.

멍하게 살아왔다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는지. 앞차의 바퀴만 보고 졸졸 따라갔던 그 시간들이 지금에야 햇님과 손짓하며 갈 수 있는 길이 되었을 것인가.

전쟁 속에서 살아왔던 날들이, 전쟁 중에는 휴전도 있겠지만, 하나 둘씩 나의 곁을 떠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쩌다 바닷가에서 황홀한 석양을 마주칠 때면, 가만히 서서 저렇게도 아름다운 광경을 또 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고, 자주 볼 수 있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오늘 아침의 밝은 태양이 나에게 다가온 것은, 아마도 석양의 아름다움을 다른 측면에서도 보아 주었으면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도 생각해보는데, 간이역에서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힘에 겨운 등짐을 진 나그네를 보는데, 이런 생각들은 그 전에는 추호도 떠오르지 않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석양은 너무나도 멋진 경관을 보여주고, 다음날을 힘차게 준비하러 가는 것으로 생각 했었는데, 아마도 그 태양은 좀 쉬러 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펄펄 날 수 있는 정열을 가지고 있는데, 삶의 틈 속에서 가을 속의 가을을 맞이하려는 마음이 찾아 들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에 괜스레 가을 사람이 된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외로운 생각이 드는 것은 혹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상(狀)이거나 더 외롭지 않기 위해 남은 열정으로 새롭게 시작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쉬어 가는 것은 좋을 것이나, 그 쉼터에서 더 편안한 삶을 누리려는 핑계가 될지도 알 수 없어 겁이 나기도 한다.

사람은 다른 생명들의 삶을 쳐다볼 수 있고, 그것을 철학으로 삼아 더 나은 곳으로 움직일 에너지로 삼기도 한다. 식물은 싹이 나고 꽃을 피우고 신록을 거쳐 예쁜 단풍으로 일 년의 생을 채워간다. 다른 동물들도 사람과 같이 초, 중, 장, 노년을 따라 생을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이런 생명 사이의 일들을 책을 삼아 읽어간다.

그래도 사람은 낫다. 다른 생명들보다 자유와 사고와 자기 책임을 만들어 가는 것이 다르다. 만약, 사람도 태어나서 일 년만 살도록 되어 있는 삶이라면 무엇을 가장 원할까? 그 때도 부를 원할까, 권력을 탐할까, 좀 더 착해 질까. 아마도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가 아닐까, 그리고 하나 더 하면 사랑이 아닐까. 그리고 좀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곧 입동이 되는 시점에서 올해에는 가을이 얼마나 내 곁에 있다가 떠나는 지도 알 수가 없어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하겠다.

누구에게라도 출근길은 의미 있는 하루의 시작이기에, 서산에 넘어가는 휘황찬란한 석양이 하루의 끝이 아니라, 더 예쁜 사랑손님으로 찾아들 수 있도록, 생각 전환의 시점이 되어야 하지않을까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