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종 덕 

친구에게

이 맘 때면 앞 냇가에서

멱 감으면서 물 먹이기를 했었지

매미 소리 뜨거운 느티나무를

다람쥐 같이 올라가 새끼줄을 매고

그네를 타곤 했었지

생 옥수수 서리하여

구워먹고 시커먼 입술로

주인에게 꿀밤 맞던 때가 있었지

초등학교 졸업 후

간 곳도 몰랐던 친구야

풍문에 외항선을 탄다던 소식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시퍼렇던 독재의 감옥에서

한참을 살았다는 친구야

스페인에 잠시 내려

예쁜 아가씨 만나

아기까지 두었다던 친구야

거기서 살지,

왜 조국이라 들어와

긴긴날을 가족을 그리며

한 살이를 했나, 이 친구야

참으로 놀란 일이 있었다, 그지?

울 엄마 돌아가신 것 어찌 알고

너는 스님으로 내 앞에 나타나

엄마를 인도 해갔다

많은 이야기는 못했지만,

잘 어울리는 법명(法名), 학륜(學輪)

친구야,

시간이 흐른 지금 너를 찾아

출가 했다던 불국사의 총무원

조계종 본부

어디 할 것 없이 다 찾아보았다

어느날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동명이인(同名異人)의 학륜과 안거(安居)에

들어 간 것을 보았다

기뻤다.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눈물 나도록 반가웠다

연이어

슬픈 소식도 들었다.

아무에게도 소식을 알리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총무원으로부터 들었다

친구야

너도 지금쯤이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존중해 왔을 것이다.

정말 너의 선택으로 불가(佛家)에 귀의(歸依)했다는 것을

누가, 무슨 뜻으로, 아쉬워하겠느냐

다만,

아무에게도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한건

혹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정수리에 정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기어코

한 번 정도는 만나야 겠다

친구야,

너는 모든 인연(因緣)을 덮는다 해도

덮어지질 않는 남아있는

인연을 어쩔래

아마도

부처님도 지워지지 않는 인연은

그 씨앗이 무엇인가

더듬어 보라고 하지 않으실까

친구야

온 세상이 바뀌었어도

그 때 그 느티나무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간단하게

매년 1월 1일이면

내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마.

친구야,

보고 싶은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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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한 친구를 찾아 애타게 헤매다 위의 시를 적었다. 울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어찌 알고 찾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던 친구가 어머니를 안내하여 저세상으로 모시고 간 후 30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 보고 싶기도 하고, 이 만큼 세월이 흐른 뒤의 모습도 아련해서 한번은 보고 싶은 친구였다.

두 달전에 그렇게 찾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교수님 잘 지내시지요?” 라는 인사였다. “누구십니까?” 했더니 이 친구 하는 말이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학륜이라한다오” 그 한마디에 완전히 정신 줄을 놓아 버렸다. 찾지도 말라던 친구가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났다.

바로 달려가지 못했던 내가 너무 답답했다. 멀리서 30년을 보내고 난 뒤의 목소리인데도 나는 나의 일에 매달려 바로 달려가지 못했었다. 그 친구도 내가 그렇게 멀리 가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경주 불국사에서 승가대학을 시작하여 그 먼 세월을 거쳐 이 쯤에서 나를 찾았다.

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그 생각이 나의 도를 넘을 때 갈 길을 놓치고 방황하는 것이 나의 삶이 아니었던가를 본다. 생활에 막혀 사는 사람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하루 만에 다녀 올 수 없는 경주와 울산의 경계 지역의 암자에 기거 한다는 것이다.

10월에 학회가 대구에서 있어 짬을 내어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다. 하늘이 있어 고운 사람을 만나는 날엔 구름 한 점 없는 고요하고도 깨끗한 하늘이 길을 이끌어 주었다. 어떨 땐 운전석 위에서 떨어지는 가을 햇살이 되고, 어떤 때는 정면에서 가림막 없는 빛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수석 옆으로 기웃거리도 하며 그 옛날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듯 했다.

코에서는 콧노래가 새어나오고 절개지의 구절초는 온몸으로 흔들어 축복을 안겨다 주었다. 농로 위의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아프게 드러누운 볏논을 보면서 이윽고 암자에 도달했다.

조용한 암자, 참새들 노랫소리 고느적하게 들리고, 고추잠자리 손님 왔다고 하늘을 울리고, 다 익어가는 단감나무 미소 지으며 반기고 있었다.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인기척이 있어 뒤돌아보니 깔끔한 스님 한분이 겸연쩍은 마음으로 다가온다.

아. 옛 모습 간 곳 없어 알아볼 수 없는 인연이었으랴. 나도 그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게 세월이 가로 막고 서 있었다. “학륜 스님 ?”하니, 그가 와락 끌어안으며 이슬로 감아 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사람인데, 나 하고는 정말 다른 세상을 살아온 사람인데, 편안하고도 인자한 모습에 반갑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세월을 거꾸로 걸어서 온 사람, 그 과정이 도를 닦아야만 올 수 있었던 그 길을, 나는 도가 아니라 길조차 모르게 살아온 입장에서는 그저 감탄만 우러나왔다.

그저 살아 있는 것이 고마웠고, 이제는 곁에 가지 못하더라도 소식을 들을 수 있고 가끔 차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더 좋다.

먼 추억거리는 이제 들먹이지 않으려 한다. 고운 마음에 피어있는 연꽃 위에 앉아 있는 고추잠자리의 선문답으로 항상 그를 곁에서 생각하고자 한다.

가을 날씨  참으로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