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7-12-20 03:03

ㆍIP: 124.xxx.224

벙어리장갑

벙어리장갑

추운 겨울이 오면 장갑 선물들을 많이 합니다. 그 중에는 손가락이 모두 각자 들어가는 장갑도 있지만 앙증맞은 소위 벙어리장갑도 많이 주고받습니다. 벙어리란 언어 장애인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풀이 되어 있습니다. 벙어리장갑은 엄지손가락만 따로 가르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한군데에 함께 들어가게 만든 장갑을 말합니다. 혹시 벙어리장갑 이야기를 아시나요? 원래 벙어리장갑은 한국인들이 맨 처음 끼었다고 합니다. 벙어리장갑에는 손가락이 두개 밖에는 없어요. 신기하죠. 왜 두 개만 만들었을까요?

겨울이 깊어지니 가장 먼저 손이 시립니다. 요즘 아이들은 손난로라는 것을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손쉽게 사용하는 것은 아무래도 필수품은 장갑입니다. 시린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장갑이지만 이 장갑이 누군가에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바로 '벙어리장갑'이야기 입니다.

겨울이 되면 심심찮게 보이는 벙어리장갑. 그러나 '벙어리'라는 표현은 장애인 비하 발언입니다. 쌀쌀하고 추운 겨울, 우리도 모르는 사이 청각장애인들의 마음까지 춥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저 그러려니 할지도 모르지만 벙어리인 자신이나 그런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의 마음은 춥고도 추운 북극만큼이나 시리고 아플 것입니다. 상처받고 소외되어 왔던 그들을 위해 이제부터는 우리 모두 '엄지장갑'으로 불러주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벙어리장갑'은 언제부터, 왜 이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요? '막다, 막히다'란 뜻의 '벙을다'라는 말이 어원이라는 설도 있고, '버벅거리다'라는 뜻의 '버우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은 혀와 성대가 붙어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4개 손가락이 붙어있는 장갑을 보고 벙어리장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모두가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의 우리들이 비하의 의도로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무심코 사용하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장애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벙어리장갑'에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주자는 캠페인이 등장했습니다.

　'엔젤스헤이븐'이라는 단체는 '손 모아 장갑이라 불러주세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취지에 공감한 많은 기업과 연예인들이 이 캠페인에 동참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심심찮게 관련 기사들도 등장하더군요.　'엄지장갑'이라고 부르자는 캠페인도 있습니다. 시청각장애인 어머니를 둔 대학생 원종건씨가 소셜 벤처 설리번과 함께 '엄지장갑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벙어리장갑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뭔가를 결정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결정 장애'가 있다고 쉽게 말하곤 합니다. 골프를 못 치는 사람에게 '골프 장애인'이라고 하기도 하고, 온전치 못한 정부 정책을 '절름발이 대책'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꿀 먹은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 등 속담도 자주 사용합니다. 모두 장애인들에게는 상처가 될 말들입니다. 장님은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절름발이 역시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에 몸이 한쪽으로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 아닌 사람을 '정상인'이라고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말은 '장애인'에 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정상인'보다는 '비장애인'이라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타당해 보입니다. 시린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지만 정작 말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감싸주지 못했던 '벙어리장갑'에 다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의 언어생활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가을에 충주에서 전국체전을 할 때에 ‘전국 장애인 체전’도 하였습니다. 올림픽도 매 한 가지입니다. 이 기회에 용어를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내가 교사였던 시절 옆 반에 농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의 얼굴이 눈에 밟히는 예쁘장한 여자 아이였습니다. 말을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아이를 정상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학교에 보내기를 6 년째인 셈입니다. 별스런 인연도 없는 교사도 가슴 아픈 사연에 마음이 아픈데 아이 부모들의 마음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는 심경이어서 그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물었습니다. 특수학교에 보내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돌아온 대답이 나를 더욱 더 당황스럽게 하였습니다. 자기네 아이는 눈치가 빨라서 상대편의 입만 보아도 무슨 말인지를 다 알기 때문에 별스런 문제가 없다 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어른은 내 아이가 장애아라는 현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렇기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심경은 벙어리라는 부름 자체가 싫었을 것입니다. 벙어리의 엄마로 불리는 일이 쇠똥 밟은 발만큼이나 싫은 것이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금세 이해가 가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싫어도 인정하여야 하였습니다. 솔직히 인정을 하고 그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혼자의 힘으로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능히 세상에 적응하여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단련을 시켰어야 하였습니다. 아무리 부정한다 하여도 장애아라는 현실이 바꾸어질 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엄마도 그걸 몰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 책임은 당연하게도 부모의 몫입니다. 늦으면 늦는 만큼 더 큰 어려움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그 아이가 오늘날 어떻게 사는지는 이 얘기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김종근

2017-12-20 09:59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벙어리 장갑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짜게 장갑, 통장갑이라고 부른답니다.
더 현실적이고 비하하는 언어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벙어리 장갑이 참 따뜻하지요.벙어리 장갑처럼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벙어리장갑 - 신형건

나란히 어깨를 기댄 네 손가락이 말했지.
우린 함께 있어서 따뜻하단다.
너도 이리 오렴!

따로 오똑 선 엄지손가락이 대답했지.
혼자 있어도 난 외롭지 않아.
내 자리를 꼭 지켜야 하는걸.


이석희	김종근 작가님~~~ 찾아 주시어 감사합니다. 고운 시까지 주시니 더 고맙군요.	12/21 08:57

김경렬

2017-12-20 14:22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안녕 하세요.
벙어리 장갑/
재미있게 배독합니다.
항상 배려 하시는 글 귀감입니다.
엄지 장갑이 정겹고 귀엽기도 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석희	김경렬 작가님~~~ 오셔서 격려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느 새 한 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2/21 08:59

백낙은

2017-12-20 19:15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작가님. 벙어리장갑 잘 읽었습니다.
요즘도 그 벙어리 장갑이 있나 봅니다.
옛날엔 어머님이 손수 뜨게질로 짜 주신 것을 많이 사용했답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벙어리 장갑이라고 불렀고요.
말씀 듣고 보니 장애우들이 기분 나쁘겠네요.
말 한마디라도 가려서 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석희	위원장님~~~ 반갑습니다. 그 장갑은 네 손가락이 함께 모이니 더 따뜻하대요. 그래서 더 인기랍니다. 저는 한 번도 끼어본 적이 없습니다. 여자 아이들이 즐겨 사용하니까 그랬을 거예요. 춥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2/21 09:01

장계숙

2017-12-21 17:43

너무나도 인간적인 글~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누군가는 꼭 말해주길 바랬던 이야기~
편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
상처가 되는 말들이 난무합니다.
비장애인들의 허접한 우월감이랄까...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무심히 내뱉는 말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계속되는 걸
바로잡아야 합니다.
장애인들도 당당하게 자신을 인정해야
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벙어리장갑의 속사정은 저도 처음 알게되어
앞으론 주변에 말해주려합니다.
멋진 글~감사한 마음입니다.


이석희	장계숙 시인님~~~ 찾아 오시어 고운 마음으로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고운 저녁 시간 맞이하세요.	12/21 18:41

박재도

2017-12-23 10:41

작가님의 글을 보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표현했든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71년도 군 생활 때 그 장갑을 선물 받고 기뻐도 했고, 또, 91년도 서울 청음회관에서 청각 장애인 25명을 소개받아 회사직원으로 고용하여 사업도 해보았습니다. 작가님의 말씀대로 저 자신도 정상인이 아니 비장애인으로서 장애를 가진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하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작가님의 좋은 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석희	박재도 작가님~~~ 그렇게까지 큰 뜻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고요, 작은 현상을 보면서 아쉽다는 뜻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아무튼 공감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12/23 11:34

정찬열

2017-12-23 18:13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일전에 겨울행사때 뵙지를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
"벙어리장갑" 읽으면서도 저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겨울이면 벙어리 장갑을 사용하던 전 결국 그나마 미세혈관이
통하지 않아 벙어리 장갑속에 핫팩을 넣고 겨울을 보내다
그만 더큰 화상을 입어 끝내는 팔을 잘라야 했기때문입니다.

물론 벙어리 장갑을 탓하기전에 핫팩을 장갑속에 넣기 편하기
위한 벙어리 장갑이 결국 화를 불러 왔을 뿐이지요
작가님들의 여러 의견 잘 읽었습니다.


이석희	정찬열 작가님! 연말 총회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벙어리장갑에 그토록 마음 아픈 사연이 함께 하였군요. 이젠 다 지난 일이니 편안하게 받아 들이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시린 손으로 인한 고생이 많겠어요.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12/24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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