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7-12-11 09:13

ㆍIP: 124.xxx.224

동장군[冬將軍]

동장군

올 겨울에는 언제 쯤 한강이 결빙될지 모르겠습니다. 한강 결빙 기준을 살펴보면 공식적인 한강 결빙은 1906년부터 노량진 앞 현재 제1한강교(한강대교) 남단에서 둘째와 넷째 교각 상류 100m 부근을 기준으로 관측하고 있다 합니다. 즉, 이 지점에 얼음이 생겨 물속을 완전히 볼 수 없는 상태를 기준으로 한강 결빙을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한국 전쟁이 일어난 1950년대 겨울에 남으로 남으로 남부여대하고 내려가던 피난민들이 한강철교가 폭파된 뒤라서 걸어서 한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이 때에는 집에서 기르던 어미 소나 황소 등짝에 이삿짐을 싣고 사람과 함께 열을 지어서 한강 얼음 위를 걸어서 내려 왔다고 하니 그 시절 얼음의 두께가 얼마나 두꺼웠을지 어렴 풋이라도 짐작이 가리라 생각됩니다. 197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합니다만 내가 서울에서 잠시 살 때 1월쯤이었을 것입니다. 새벽 다섯 시에 청계천에서 태릉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을 잘 몰라서 엉뚱한 곳에서 한 시간 여를 기다리는데 얼마나 추운지 내 발이지만 마치 남의 발처럼 발에 감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녁밥을 해 먹고 나면 아궁이에 벼 껍질을 고래 깊숙이 밀어 넣고 잠을 잡니다. 여러 형제들이 한 개의 솜이불을 덮고 잠이 들지만 자다보면 동서 사방으로 흩어져서 잠결에 이불을 잡아당기니 이 놈의 이불이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드디어 새벽녘이 되면 동자들은 새우등이 되어 웅크리고 누웠다가 어머니의 호통 치는 기상나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일어납니다. 마당가에 있는 소위 변소는 또 얼마나 추운지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으면 시베리아가 따로 없습니다. 세수를 마치고 벼락같이 마루를 달려 지나 문을 열면 문고리가 꼭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습니다. “상 받아라.”는 어머니의 신호에 맞추어 마루에 나가 밥상을 받으면 김치 그릇 간장 종지 장아찌 보시기가 썰매를 탑니다.

내 나이가 칠십이 넘은 지가 다섯 손가락이니 내 어린 시절 추위도 빼놓을 수 없는 보물입니다. 3학년까지는 교실이 없어서 뒷동산 잔디밭에서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꽃 피고 새 우는 봄철과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철 그리고 초가을 쯤 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 합니다. 하지만 공기가 으스스하면서 볕이 그리운 날이 오면 잔디밭 야외 교실로는 배겨낼 재간이 없습니다. 이때부터는 복식 학급이 운영됩니다. 책상은 없고 겨우 판자만 깔린 하나의 교실에서 3학년과 4학년이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앉아 선생님 한분이 두 학년을 가르칩니다. 이게 말이 학교지 사실은 학교도 아닙니다. 요즈음 같으면 “이게 뭡니까?” 할 겁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오면 난로가 배급됩니다. 장작 난로입니다. 요놈이 배당 되면 우리는 신이 납니다. 선생님은 감독이 되고 우리는 황토를 이겨서 난로 받침을 만듭니다. 언제 불이 붙나 보고 또 보아도 난로에 불을 붙이는 날은 오지를 않습니다. 빈 난로를 바라보기만 하여도 따뜻한 기운이 듭니다. 아예 손을 난로에 갖다 대면서 손을 데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연료가 있나요. 없습니다. 장작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장갑은 있나요. 없습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장작 묶음을 옆구리에 끼고 와야 불을 땝니다. 불이 붙어서 활활 탈 때는 코 끝에 온기가 머물 듯 하다가 금세 종적을 감추어 버립니다. 5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뒷산으로 땔감 사냥을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절 겨울에는 팽이치기를 참 많이도 하였습니다. 내가 나무를 깎아서 만든 팽이가 적어도 3,40여개는 족히 될 것입니다. 공구가 변변히 없어서 낫으로 나무를 깎다 보니 손도 많이 다쳤습니다. 나무를 자른다고 톱질을 하다가 잘못하여 찍힌 손등에 맺힌 영광의 상처는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팽이 끝에 구슬을 박아야 잘 돌아가는데 그게 없으니 재미도 별로 없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팽이를 쳐대니 길바닥이 아주 반질반질 합니다.

초등학생이 대나무를 좁게 잘라서 연을 만드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입니다. 연에 구멍을 내어 실을 꿰고, 실의 길이를 맞추느라 허리가 고부라지도록 앉아서 일천 정성을 다합니다. 드디어 연을 다 만들었다고 환호성을 지르며 밖에 나가 연을 띄웁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연은 어김없이 한쪽으로 기울어 곤두박질을 치고 맙니다. 균형을 맞추어 달라는 뜻입니다. 연살의 무게가 다르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꼬리는 이미 균형을 잡아서 붙였기 때문에 지푸라기를 매달아 주어야 합니다. 이 일도 단번에 되는 경우는 드물 만큼 나를 시험합니다.

연을 참 많이도 만들었습니다. 방패연 가오리연을 합하여 매년 여러 개를 만들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가오리연은 품격이 좀 떨어진다며 주로 방패연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연을 날리다가 바람의 힘을 견디지 못 이긴 연줄이 그만 끊어지고 나의 사랑하는 연은 두둥실 두둥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뒤집어 졌다 엎어졌다 춤을 추며 날아갈 때 망연자실하였던 그 마음은 아직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날아가는 연을 따라 뛰어가기를 몇 차례, 마치 무지개를 잡겠다고 달려가는 어이없는 소년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이렇게 애지중지 하며 만들었던 연도 정월 대보름이 되면 이별을 하여야 합니다. 지난해의 액을 방비한다며 동구 밖에 서 있는 대추나무에 매달고 다음 해를 기약하여야 합니다. 말 그대로 대추나무에 열 걸리듯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날만큼 하얀 연이 닥지닥지 이 대추나무에 걸리곤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빈 마음을 체험하였지 싶습니다.

서울에서 살다가 직장을 따라서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를 타고 갑니다. 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부산이 초행인 나는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엄청 긴 터널도 지나갔습니다. 이내 밀양을 거쳐 삼랑진을 지나니 기차는 낙동강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갑니다. 삼랑진에서 시작한 낙동강 얼음은 구포다리 밑까지 문자 그대로 꽁꽁 얼어 장관이었습니다. 부산이라고 하면 서울에서는 따뜻한 남쪽 나라라 하는 곳인데 상황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나는 낙동강 얼음을 보면서 정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이 추위를 어찌 이겨낼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기우였습니다. 역시 부산은 부산일 뿐이었습니다. 부산은 내 인생의 중심 부분을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백낙은

2017-12-11 10:51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재미 있는 동장군 잘 배독했습니다.
아궁이, 장작 난로, 팽이 치기, 연날리기, 대추나무에 걸린 연,등등
저의 어린 시절을 다시 연상시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즘은 편리해 지긴 했지만 낭만도 없고 추억꺼리도 없는 민밋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온난화 현상이라 그런지 눈도 많이 오지 않고 얼음도 많이 얼지 않는 것 같네요.
오늘 부터 강력한 한파가 밀려 온다니 걱정이긴 합니다. 몸 조심하세요.


이석희	위원장님 ~~~ 반갑습니다. 글 제목처럼 동장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러든 말든 밖으로만 나갔던 그 을씨년스런 겨울날의 추억이 그립습니다. 춥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2/11 18:42

김종덕

2017-12-11 17:53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시지요? 촌에서 산 사람들은 동장군의 위력을 실감햇응 럯입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소죽으로 때 배끼는 것이엇읍니다. 참 따스하긴한데 송늠 때가차서 피가나고 조문지르면 살인지 피인지 구뵤ㅕㄹ도 되지 않던 그시절이 마냥 영화 같이 떠오릅니다. 작가님, 깊게 감상합니다. 옥 겨울도 쉽게 보내시고 행복하십시오.


이석희	김종덕 작가님! 지금 생각에는 참 고생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시절에는 고생이라는 생각이나 힘 들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앞도 뒤도 옆도 다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당연하다 하고 살았어요. 나름대로는 행복하다 생각했지요.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12/11 18:46

김상화

2017-12-12 00:12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글을 읽다 보니 어찌 어린 시절 저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팽이치기며 연날리기며 거기다 겨울엔 썰매를 만들어서
썰매를 타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져 집으로 오면 어머님께
혼도 많이 낳습니다. 또 자기기 제기차기 땅따먹기 등 그때의
놀이라고는 그런 것밖엔 없었으니까요
지금 가만히 회상해 보면 그때가 참으로 즐거운 시절 이었던 것같습니다
작가나님 날씨가 매우 추워졌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를 두 손 모으겠습니다


이석희	김상화 작가님~~~ 그 옛날에 자란 사람치고 다 비슷할 거예요. 제기차기, 자치기, 짚공차기 참 유치한 놀이도 많았어요. 그래도 그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격려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12/13 15:12

김종근

2017-12-12 09:04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곱게 펼쳐진 동장군 감명깊게 읽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듯 합니다. 물론 저의 세대보다는 앞서지만
공감가는 부문이 많습니다. 저는 제일 춥고 제일 더웠다는 대구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영하2~30도는 되었지요. 요즘은 온난화로
많이 따뜻한 곳이 되었지만 헐벗고 굶주리던 어린시절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감사히 배독하였습니다. 오늘은 많이 춥군요.
아침기온이 구미도 영하11.5도라는군요.
감기조심하세요.


이석희	김종근 작가님~~~ 그 시절에는 아마도 대구가 전국에서 제일 춥고 또 덥다고 들었어요. 오히려 지금 그 명성을 빼앗겼지요. 제가 대구에 살 때만 하여도 엄청 더웠어요. 고생 참 많이도 하셨습니다. 옛 이야기 하면서 재미 있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2/13 15:09

김경렬

2017-12-12 14:28

제 바로위의 오라버니와 갑장이십니다.
제 오빠가 작가님 처럼 똑같이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오빠뒤를 졸졸 따라 다녔구요.
야외 교실의 추억도 흥미롭습니다.
저도 일학년때 초가자붕과 흙벽 사이의 하늘이
보이는 교실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동장군 한달음에 배독 하였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뵐수 있지요?
감기 조심 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김경렬 작가님~~~ 약간 빗나간 경험들이니 섞여 돌아가는군요. 지금 생각하면 상상이 안 가지요. 그래도 학교라고 다녔고 비참하게 먹고 살았지만 안 죽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참 춥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12/13 15:11

박재도

2017-12-15 18:37

작가님의 좋은 글에서 옛일을 생각합니다.
저가 1974년 진해 4 비료 공장에서 근무할 당시, 충주 제1 비료공장에
파견 교육을 받든 그 시절 충청도에는 밤 통행금지도 없었지만
특히 목행리 앞 탄금대에서 처음 스케이트를 배우든 추억이 납니다. 그해 겨울
몹시도 추웠지만 얼마나 신이 났든지 그렇게 엉덩방아를 많이 찍어도 아프지 않았는데
저녁에 집 애 와서 보니 멍이 시퍼렇게 들었더군요.
그래서 작가님의 거주지와 글 제목 동장군 속에 그 시절이 생각나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이석희 작가님의 좋은 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먼 이국땅에서


이석희	박재도 작가님~~~ 반갑습니다.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군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그 목행동입니다. 그 옛날에는 목행리였다고 합니다. 그 비료공장이 여수로 이사를 하고 그 자리에 새한미디어를 설립하였고 그 회사 사원아파트를 일반에게 분양하면서 아파트 이름이 새한아파트가 되었지요. 지금 저의 집도 바로 그 아파트입니다. 탄금대로 아침운동도 나갑니다. 월상리에 남한강 수량을 조절하는 댐을 건설하여 커다란 호수가 되었어요. 작년에 조정지 댐에서 세계 조정 선수권대회를 했지요. 이국땅에 계시니 상상이라도 즐거우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성어린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12/15 22:26

벙어리장갑

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