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이석희
ㆍ작성일	2017-05-17 07:11

ㆍIP: 124.xxx.224

속지 마라!

속지 마라!

성철 스님의 상좌를 지낸 원택 스님께서 대학에 다닐 때의 일화입니다. 원택 학생이 어느 해 여름 방학 때 큰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발심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한 번 바꾸어 볼 심산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가야산에 계시는 성철 스님을 뵈러 간 일이 있었답니다.

힘들여서 만나 뵙게 된 성철 스님께서는 즉석에서 설법은 아니 하시고 느닷없이 법당에 가서 삼천 배를 올리고 오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셨답니다. 젊은 대학생으로서는 뚱딴지같은 말씀쯤으로 여겨질 법도 한 일이지마는 원택 학생도 그 그릇이 보통 사람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염천에 삼천 배를 올리고 나니 초죽음이나 진배없었을 테지요. 겨우 기어 나오다 시피 해서 축 쳐진 몸으로 큰 스님 앞에 당도하니 드디어 법문을 내리십니다.
“속지 마라!” 이 무슨 해괴한 넋두리란 말입니까?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더랍니다. 아니 납득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처럼 허망하고 후회스런 일은 일찍이 당해 보지 않은 것만 같아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싶더랍니다. 더욱 더 가관인 것은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그만 나가거라.” 하시더랍니다. 자세한 해설이라도 잔뜩 고대하였건만 허무하게도 그것으로 그만이었습니다. 그 법문의 깊은 뜻을 깨치는 데는 상당히 긴 시일을 요하였답니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는 속아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들 거의 모두는 ‘나는 잘하고 있다’ 하여 자만하고 함부로 살아가니 자신에게 속고 사는 것입니다. 거의 모두가 잘하고 있는데 나라는 어찌 이리도 뒤죽박죽이 되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병에 시달리고 있건만 유독 자신은 그 무리로부터 퇴출시키고는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 나는 우리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며 살고 있어요. 나는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며 살고 있어요. 우리 아들은 효자야.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어요, 단지 친구가 문제이지. 나는 인간성이 참 좋은 사람이야. 나는 모든 규칙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어. 이 정도면 나는 친구들에게도 매우 인심 좋은 사람이지. 나는 제자들을 매우 사랑하고 자상한 선생님이지. 나는 훌륭한 상사야. 나의 좌우명은 배려야. - 등등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예 자신감이 장마철 강물처럼 철철 넘쳐흐릅니다.

위에서 우리가 속기 쉬운 몇 가지 사례들을 열거하여 보았습니다만 어찌 이 뿐이겠습니까? 나는 나 자신에게 속지 않고 살아가는지 스스로 점검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속고 살아야만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속은 듯이 속아 주는 듯이 살면 참 편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속아주면 상대방은 그런 줄도 모르고 속으로 얼마나 쾌재를 부르겠어요. 그것을 다 알고 바라보는 나는 또 얼마나 재미가 쏠쏠하겠어요.
이 시간 사실 천진한 마음 곧 각자의 천심으로 돌아가 봅니다. 천심은 양심이라고도 합니다. 나는 부모에게 효자인가. 나는 자녀에게 훌륭한 부모인가. 나는 아내에게 자상한 남편인가. 나는 남편에게 고마운 아내인가. 나는 제자에게 자랑스러운 스승인가. 나는 스승에게 알뜰한 제자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그렇다고 확실히 손을 들고 나올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터무니없는 말 그만 하라고 큰 소리 칠 만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성과지상 주의가 세상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성과를 평가하여 성과급을 주는 사회로 바뀐 지가 오래 됩니다. 이렇게 세상이 뒤바뀌면서 인간성 위주의 사회에서 능력 위주의 사회로 변화되었지 싶습니다. 물론 성과가 그 사람의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방법은 윗사람이 쉽게 살아가고 쉽게 자리를 보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성과란 결과물입니다. 모든 과정은 결과로 평가받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교사였습니다. 교사의 성과를 어떻게 매년 할 수가 있겠어요. 한 학급을 한 해 동안 맡아 가꾸어서 그 아이들의 학습 결과를 어찌 평가한다는 말인지 참으로 아리송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하여야 한다고 덤비니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평가의 결과 급료에 차등을 두니 어느 교사가 이를 순순히 따르겠어요. 이 차등은 훗날 승진에까지 영향을 마칩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인 돈과 명예를 좌우하는 일이기에 경우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눈이 뒤집힐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사이에는 얼마나 속이 시원하도록 개선 시행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속은 듯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예를 들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결과 못지않게 위대한 과정도 많이 있습니다. 잘 하려고 한 일이 잘못되어 그 결과가 악이 되었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세상이 이러하니 속는 일과 속아주는 일을 적절히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은 더 고달플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효자다 나는 훌륭한 남편이다 나는 만점 아내다 나는 모범 어머니다 나는 정말 좋은 사원이야 하고 말입니다. 더 나아가 남에게는 아량으로 포용하고 나에게는 큰 손해 날 일이 아니거들랑 눈 질끈 감고 속아주려고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훈훈한 세상이면 더욱 더 좋겠습니다.

박목철

2017-05-17 08:20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좋은 글에 머믈다 갑니다.
불교의 교리는 생각의 깊이를 더해 준다는 생각입니다.
나이가 드신 노승도, 선문답이란 멋진 대처가 있지요,
듣는 사람이 알아서 깨우침을 얻는다는, 할! 이라는 호통도 있답니다.
검도에서도 노인이 젊은이와 대련 합니다. 머리를 한대 맞으면,
잘 쳤다고 칭찬해 줍니다. 맞은게 아니라 맞아준 것이지요, ㅎㅎ


이석희	소운님~~~ 반갑습니다. 마치 기다리신 듯 오셨군요. 저의 생각으로는 깨친다는 게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길을 스스로 찾아서 실행하는 힘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종교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할 수가 있을까 생각하면 답이 보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종교가 하나로 귀결되지요. ㅎㅎㅎ 좋은 말씀에 감사를 드립니다.	5/17 09:20

백낙은

2017-05-17 10:01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
"속지마라" 는 성철 스님의 가르침은 탁월한 듯 합니다.
속지 않으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서 남보다 모든 면에서 깊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여깁니다.
그 가르침에 담겨 있는 깊은 의미는 배움을 구하러 간 사람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세월이란 놈에게 속아 왔답니다.
지금부터라도 깨어 있어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석희	위원장님~~~ 고운 발걸음 하시고 알뜰한 교훈까지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세상에 다 배운 사람은 없을 거예요. 늘 배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지요. 그러므로 항상 모자라지요. 이것을 모르고 산다면 자신에게 속고 사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5/17 12:41

정찬열

2017-05-17 13:04

`이석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이석희 작가님!"속지마라"
많은 교훈을 주는 글중에서도 유독 "천심은 양심이다"
머릿속에 쑥 들어오는 아름다운 글을 배웁니다.
세상을 살면서 알아도 모르는듯 속아주면서도 속는듯
살아가느 것도 삶의 한방편이라고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늘 좋은 가르침에 글에 깊은 감동으로 배독합니다.
조석으로 기온차가 심한 때입니다. 늘 편안 하시길 빕니다.


이석희	정찬열 작가님~~~ 과찬이십니다. 저 깉은 사람을 보고 언필칭 말은 잘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고운 글 주시니 감사합니다.	5/18 08:41

김종덕

2017-05-17 13:04

이석희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성과주의 이것은 없어져야함에 틀림없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의 인간성이 파괴되고 같은 동료를 동료로 친하지 못하게하는 관리자들의 못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을 풀어 놓으면 시끄러운 일이 많이 생길까 두렵겠지요. 그래서 저는 자유와 생명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 발등 찍는 일이 될 것입니다.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이석희	김종덕 작가님~~~ 성과주의의 폐해는 이루다 말할 없을만큼 큽니다. 눈에 보여야만 성과가 되기 때문에 눈속임이 횡행을 합니다. 결국에는 줄세우기로 나타나고요. 좋은 교훈에 감사의 마음 전해 드립니다.	5/18 08:45

김상훈

2017-05-18 00:02

얼마전, 화두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적이 있었음을 아실 겁니다. 지금까지 그 화두는 풀리지 않고 있지만, 큰 스님들이 던지는 화두나 일갈은 분명 어떤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성공한 자들의 샘플을 모아놓고 너도 이렇게 되야 한다고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인성교육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으니 사회에 나가서도 오로지 경쟁만 다투게 됩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중요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패한 시대입니다. 사실 결과가 중요하긴 하지요. 그러나 작가님 말씀대로 결과 이상 중요한 것은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 위주의 교육방식부터가 뿌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면 오로지 경쟁에만 매달리게 되고 자연스럽게 성과위주로 치닫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생각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이석희	김상훈 작가님~~~ 제가 아는 화두는 글이나 말로나 공식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증득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화두나 의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데요, 현대인의 깨달음은 그 화두의 오묘한 이치를 어찌하면 실생활에 활용할 수가 있을까에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佛法是生活生活是佛法이 되어야 합니다.	5/18 08:50

김종근

2017-05-19 10:45

이석희 자가님 반갑습니다.
속지마라. 감사히 배독합니다.
에전성철 스님이 우리 시골집 뒷산 도리사에 계실적에
저희 시골집에 방문한 적이 있었답니다. 우리집에서
출가한 분이계셨는데 그분과 함께 왔었다고 합니다.
터를 보고선 3정승이 날 터라고 하였다는데...,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되세요.


이석희	김종근 작가님~~~ 3정승이 날 터에 사시다니 놀랍습니다. 결코 실망하시지 말고 오래오래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ㅎㅎㅎㅎ	5/19 16:13

김상화

2017-05-20 01:01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오늘도 작가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가려고 왔습니다
성철스님의 가르치심이 원택 스님께서 대학에 다닐 때
여름 방학 때 큰 깨달음을 이루고자 하는 발심이 세상을 한 번
바꾸어 볼 심산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가야산에 계시는 성철 스님을
뵈러 간 일이 있었군요
역시 큰 스님들께서는 가르침 자체가 예사롭지 안은듯합니다
이석희 작가님 곱게 빚은 속지마라 잘 배워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석희 작가님!


이석희	김상화 작가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불가의 화두나 의두 성리 등은 그 깊고도 오묘한 진리의 세계를 깨닫게 하는 큰 법문들입니다. 불교에만 1700개의 화두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만 깨달아도 다른 화두들은 쉽게 그 근본 자리를 깨칠 수 있다고 합니다. 배우신다 하심은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제 뜻하고는 다릅니다. 어찌되었든 감사합니다.	5/20 06:39

마중물

잘못 없는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