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권기화
ㆍ작성일	2016-01-15 10:47

ㆍIP: 116.xxx.59

고향바다를 추억하다

눈을 감는다. 아득히 밀려오는 그리움 가운데는 늘 검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바람이 불면 파도는 깊은 이랑을 만들어 춤을 추다가 갯바위에 사정없이 곤두박질한다. 풀어 젖힌 긴 흰머리가 바람타고 안개처럼 흩어진다. 이내 허공을 유영하던 짭조름한 기억들이 밋밋한 세월 속에 푸른 점 하나 찍고서 나를 안고 그 바다로 향한다.
뜨겁게 달궈진 모래밭으로 더위 먹은 바람이 헉헉거리며 한차례 지나갔다. 이윽고 해가 서쪽 산등성으로 기울고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면 붉은 노을이 어느새 동쪽바다로 달려와서 앉는다. 여름날 밤바다는 불꽃잔치에 잠들 겨를이 없었다.
수평선 저 멀리에서 뱃고동 소리가 뚜우 뚜∼ 하고 울려왔다. 만선의 깃대를 꽂고 흐뭇한 미소를 머금으신 아버지가 펄럭이는 깃발을 들고 뱃머리에서 마을로 신호를 보내신다. 어머니는 큰 물통과 바구니를 준비하고 오징어를 장만하실 칼과 도마를 챙기시기가 바쁘다. 햇살이 정오를 지날 즈음이면 집 앞 모래밭의 두 팔 벌린 덕장에는 가슴을 열어젖힌 오징어가 불어오는 해풍에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몸을 비튼다.
잘 건조된 오징어는 우리 집 작은방을 가득하게 채우고 비싼 값으로 팔려나가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반듯하게 다듬어 잘 손질된 오징어를 차곡차곡 쌓아두시고는 몇 축이나 되는지 거듭거듭 확인하셨다. 그 얼굴이 봄날 모란꽃처럼 활짝 피셨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태풍은 바다의 무법자였다. 집채만 한 파도는 성난 사자가 되어 무서운 얼굴로 연례행사처럼 한 두 차례 어김없이 다녀갔다.
바다를 업으로 살아가는 어촌의 살림살이는 겨울이라고 해서 손을 놓고 쉴 수 없었다. 남정네는 서슬 퍼런 바다에 몸을 맡기고 아낙네는 파도가 떠밀어주는 미역과 다시마를 건지거나 돌팍에 달라붙은 김을 채취하러 갯가로 나갔다. 파도가 치는 날에는 물살의 힘으로 바다 멀리에서 떠밀려오는 해조류가 다른 날보다 많았다. 아낙네들은 너도나도 깔구리를 들고 바다로 향했다. 긴 대나무로 만든 깔구리는 어느 집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필수품이었다. 장대의 끝마디 부분에 대여섯 가지로 뻗은 튼튼한 소나무를 잘라서 우산모양의 깔구리를 완성한다. 잘 만들어진 깔구리는 더 많은 해조류를 건져 올린다. 파도가 세차거나 깔구리에 걸려오는 해초가 많아지면 깔구리는 그 무게를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망가져서 또 다시 만들어야만 했다.
밤새 눈이 내렸다. 간밤에 내린 함박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고도 그칠 줄을 모른다. 쌓인 눈 위로 추위도 아랑곳없이 마음부터 먼저 달려가는 아침이다. 강아지마냥 깡충깡충 뛰고 싶지만 십리나 되는 학교는 무정하게도 멀다. 동네 아이들은 일찌감치 눈 덮인 길을 헤쳐 작은 발자국을 자박자박 찍으며 총총걸음을 옮긴다. 파도는 내리는 눈을 연신 쓸어 녹인다. 아이들은 바닥이 드러난 모래톱을 달려 파도와 경주한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아이들의 푸른 꿈은 겨울 바다가 뿜어 올리는 하얀 물보라처럼 높이 솟았다.
봄날, 고향 바닷가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거칠고 척박한 모래땅에도 갯메꽃 덩굴이 초록빛 잎사귀를 달고 성깃성깃 돋아났다. 바람이 파도의 노래를 싣고 조심스레 모래언덕에 쉬어갈 때 연분홍 갯메꽃은 여기저기서 수줍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매서운 삭풍이 낳은 조화이리라.
“추억은 그리움을 키우는 집이다.”라고 쓴 어느 시인의 글처럼 세월이 흘러 내 추억의 집에도 바다의 그리움은 말없이 커간다.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나무처럼 그리움의 파편들이 하나 둘 나이테를 그리며 응집하고 있을 것이다.
고향 바닷가. 어린 내가 뛰놀던 곳.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간직한 그 바다. 그 추억 속에는 지금도 반짝이는 모래언덕 위로 갯메꽃 닮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웅성댄다. 먼 나라의 동화처럼.

*돌팍: ‘돌멩이’의 방언(경북, 전남, 충남)
*깔구리: ‘①‘갈퀴’의 방언(경남) ②‘갈고리’의 방언 (강원, 충청)

김경렬

2016-01-15 13:20

권기화 작가님!
고향 바다를 추억하다/
재미있게 감상 했습니다.
오징어를 방안 가득 쟁여 놓으신
어머니의 흐믓함이 정겹게 느껴 집니다.
작가님!
등단을 축하 합니다.
수필 서재가 작가님 작품으로 더욱 빛나길 기대 합니다.
환영 합니다.


권기화	김경렬 작가님! 저의 글에 첫 댓글을 달아주셨군요~ 누군가의 관심이 큰 용기가 되고 희망입니다. 오징어를 매만지시던 어머니의 모습, 고단한 삶을 오로지 자식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의 젊은 날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게 익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갈고 다듬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16 10:16

백낙은

2016-01-15 16:43

권기화 작가님.
수필분과 위원장 백낙은 입니다.
아직 인사도 못 드렸는데 고향바다를 추억하는 멋진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에 거주하고 계신듯 한데 고향이 바닷가 어디신지 궁금해 지네요.
저는 김천이 고향인데 아마 20세가 다 되어서 바다를 처음 본 듯합니다.
"십리나 되는 학교는 무정하게도 멀다."고 하셨는데
저도 야간학교를 다닐 때 십리 길을 6년간 걸어 다녔답니다.
공동묘지 앞을 지나고 언 냇물을 맨발로 건너면서요.
진짜 매정하게 멀었는데 지금은 5분 거리이니 세상 참 좋아 졌지요.
옛날을 생각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필 서재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며 늘 향필하시고 은안하소서.


권기화	수필분과 위원장님! 귀한 발걸음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저~만큼 앞서가는데 정작 자판을 두들기는 손은 갓난아기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고향은 울진입니다. 동해바다는 해님도 어지간히 부지런하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비비면 멀리 보이는 수평선위로 붉은 태양이 어느새 보름달처럼 봉긋하게 솟아올라왔습니다. 어릴 적 학교는 왜 또 그렇게 멀었던지.... 저의 서재에 방문해 주셔서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1/16 13:12

정찬열

2016-01-15 22:04

"고향바다를 추억하다"
사계를 아름답게 그려주신
권기화작가님! 반갑습니다.
고향이 동해 바닷가덕장이
가보가되는 곳이군요

섬세하게 그려주신고향 그림
재미있게 배독했습니다^^^.
등단을 축하드리며 작가님 서재가
늘 밝게 승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권기화	정찬열 작가님! 저의 기쁨을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은 걸음마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관찰하는 사고의 폭을 넓혀서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작가님의 따뜻한 격려로 힘을 얻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된 날 되세요~^^	1/16 10:52

박희자

2016-01-24 13:17

어린이가 다니기에는 먼 십리 학교길은 정말 무정하게도 멀었네요
바다는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성난파도로 우리들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지요
추억이 많은 바다를 생각하면서
가슴 찡해오는 그리움이 내려앉습니다
작가님 "고향바다를 추억하다"
애틋한 추억들이 곱게 그려집니다
추운날씨가 계속되는 요즘입니다
감기조심하시고 따뜻한 겨울되세요~^^*


권기화	박희자 시인님! 고운 님의 걸음걸이는 뒤태도 아름답지요~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찾아주신 시인님의 애정 어린 관심에 고마움 전하고 싶습니다. 추억을 회상하며 찡해 오는 그리움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것도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님도 많이 행복하시길 기원할게요~^^*	1/25 17:48

백낙은

2016-02-08 11:33

권기화 작가님.
설날 아침에 한 번 찾아 뵙고 싶어 왔습니다.
지난 날에도 좋은 작품으로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한 식구가 되셨습니다만
올해도 더욱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시고
우리 수필 서재를 빛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즐거운 명절이 되시기를 바라고 보람된 나날이 되소서.


권기화	고마우신 목사님! 저의 서재에 행복 한아름 남겨 두셨네요. 설날 아침에 오신 고운 걸음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기쁨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저도 올해는 새로운 계획으로 시작에 임하고 있습니다. 화이팅!~ 입니다~^^*	2/9 16:23

박목철

2016-03-09 20:54

어촌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어린시절 포항인근의 도구라는 곳에 아버지께서 병원을 운영하셨습니다.
서울에서 살던 우리는 피난통에 아버지와 헤어졌고 나중에 그곳에서
병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그때 오징어를 말리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옛 어촌은 참 살기가 어려웠지요, 지금은 소득이 높아서 풍요롭게 사시더군요,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권기화 작가님,


권기화	박목철 작가님! 오랜만에 와서 뵙습니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하세요~^^	8/2 13:15

이현정

2016-05-23 23:43

귄기화 작가님
어린 시절 풍경을 곱게도
그려 놓으셨네요
아름다운 문장 입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좋은글 많이 쓰시고
행복 하세요


권기화	이현정 시인님! 여기서 뵈니 더 더욱 반갑네요~^^* 시인님께서도 향기나는 예쁜글 많이 올려주시고 저의 서툰 글에 지적도 해 주세요~	8/2 13:17

아름다운 선물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