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6-03-12 08:13

ㆍIP: 121.xxx.149

대책 없는 방랑기
대책 없는 방랑기 장 춘희

스물여덟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1970년대 중반이었고 그 땐 그랬다.
남편하고는 햇수로 삼 년 씩이나 소위 연애라는 만남을 하는 사이였지만 결혼에 대해서는 썩 내켜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무엇에 건 묶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 결혼도 인간 풍속에 갇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답답했다.
그러나 남편은 적극적이 였고, 만남자체에 성의를 다 했다.
남편은 제약회사에 다녔고 나는 관청 비서실에 근무했다. 같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데도 매일 전화하고 일주일에 한 통씩은 편지를 보내왔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도 그랬다. 비서실 퇴근시간은 윗사람 퇴근 시간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늘 고르지 못했다. 그런 내 사정을 늘 이해하고 약속 시간에 아무리 늦어도 편안히 기다려주는 아주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정도라면 뜨거운 마음은 아니어도 한평생 편안은 하지 않을까? 그리고 웬만만 하다면 누구하고라도 별로 손해 볼 것도 없다 싶은 나이라고 생각했고, 아래로 여동생이 둘씩이나 있는 집안의 장녀였다.

결혼하고 얼마간의 신혼 시절이 지나자 그제 서야 남편이 바로 보여 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홉 남매의 막내로 자란 어리광쟁이였다. 책임감과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아내와 자식을 거느린 가장 역할보다는 부모 형제의 그늘을 더 즐겨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으로 그야말로 대 반전이었다.
시댁 가족들은 핏줄에 대한 애정이 도를 넘어 서로에 대한 어떤 잘못도 바로잡지 않고 감싸 안는 잘못된 애정관을 가지고 있었다. 밖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그 울타리 안에 숨어버리면 모든 게 해결되는 무적의 전사 같은 집안이었다.
우리 부부사이의 일들도 시댁식구들과 의논되어 결정되어지고 그러다보니 우리 내외는 의견이 맞는 게 없었고 싸움이 잦았다.
도대체 나는 나이를 어디로 먹었나 싶었다. 그가 키워지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들의 품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부분은 알아볼 생각도 못했다.
정작으로 중요한 부분들과 알아야 할 것은 하나도 모른체 그저 나한테 열중했다는 그 볼품없는 이유 하나로 여기까지 오다니, 나 자신의 부족한 생각이 한심했다.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생각하니 ‘나룻배타고 바다 건너는 기분’처럼 막막했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남편은 착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바라는 적당한 숨쉬기의 자유도 줄줄 아는 사람이었다.

2004년도 해가 넘어가고 있는 12월 초에 분당 차병원에서 직장암 3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해가 바뀌고 1월 25일 외과에서 수술을 받았다. 다른 장기와 달리 직장암 수술은 입원기간이 길었다.
장은 마취에서 풀어지지 않았지만 위에는 위액이 차기 때문에 코에 가느다란 호스를 넣어 목을 통해 위액을 빼내야 했다. 금식 기간도 길어서 목에 있는 혈관에 큰 주사바늘을 꼿고 그 주사기를 통해 고단백을 넣었다. 배에는 수술한 피가 배에 고이는 피를 빼내는 주사기를 꼿았다. 그리고 방광에는 소변통을 차고 있었다.
온 몸에 로봇처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고통과 몸의 아픔보다 더 괴로운 게 얼마간 꼼짝없이 병실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구속감이었다. 숨통을 조여 오는 것 같은 그 구속감을 견디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쉴 새 없이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니는 것과, 복도 한 쪽 끝 유리창을 통해 탄천으로 마음을 내보내서 숨을 쉬는 게 전부였다.
쉴사이없이 복도를 걸어 다닌 덕분에 회복은 빨랐다.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는 담당 의사를 졸라 한 주일 일찍 퇴원했다.
퇴원 3주 만에 함께 가겠다는 남편을 뿌리치고 혼자 차를 끌고 강릉 경포대를 다녀왔다.
그 전에도 여행을 좋아해서 자주 집을 나섰지만 그건 그냥 단순한 숨쉬기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서 경험하지 못한 맛이었다. 그 것은 달콤하고도 황홀한 천상양식이었다.

그 뒤로 방사선 서른두 번 항암 서른 번을 8개월 동안 받았다. 한 달 다섯 번의 항암이 끝나면 앙상한 몰골을 마스크와 모자 속에 감추고 차를 달려 천상에서 훔처다 전국 곳곳에 갈무려 둔 양식을 찾아 미친 듯 달렸다.
동해, 서해, 남해, 가슴은 뜨겁고 기쁨은 마구마구 솟구쳤다. 먹어도먹어도 허기진 가슴에 청상양식을 마구 퍼 담았다.
직장이 없는 환자가 그렇듯, 먹는 대로 곧바로 화장실을 가야하는 고통도 기쁨에 버금가게 컸다. 그러나 그 고통도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날개 짓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자유로움에서 얻는 숨쉬기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의 힘든 시간들을 한결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

젊은 날 남편은 늘 시댁 일을 우선하고 가장의 의무를 저버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입버릇처럼 ‘우리 부부는 잘못 만났다. 도대체 맞는 게 없다. 인연이 아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 남편은 ‘내가 당신한테 잘해준 건 없지만 그래도 자유는 주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럴 때 마다 ‘당신이 내게 준 건 자유가 아니고 방치다’ 했었다.
항암 치료를 하면서 새삼 내가 구속감을 몹시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너그러운 성격으로 인해 내가 얻은 자유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 했었나 하는 걸 깨달았다. 이만큼 살면서 많은 것을 겪고 보니 우리부부처럼 서로 절실히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사이가 천생 연분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백낙은 2016-03-12 14:33	장춘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남의 일 같지 않아 찬찬히 읽었습니다. 부부는 전생(나는 믿지 않지만)에 원수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길다면 긴 세월 잘 맞추어 가며 지금까지 살아 오신 것 보면 두 분은 잘 맞는 겁니다. 거기다가 "다행하게도 남편은 착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바라는 적당한 숨쉬기의 자유도 줄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편이신데 또 더 바라시면 과욕 아닐지 모르겠네요.ㅎㅎㅎ 그렇습니다. 두 분은 천생연분입니다. 누구나 완전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서로 채워 가며 사는 거랍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오며 늘 건필하시고 아름다운 가정 꾸려 행복한 나날 되소서.

장춘희 2016-03-13 12:01	백선생님 안녕하세요. 미숙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백선생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특히 사모님의 쌍꺼풀 수술얘기는 너무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처진 눈이 갑갑해서 몇 년째 벼르고만 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셔요.

원영희 2016-03-13 15:24	안녕하세요! 뵌지 꽤 되었지요? 수술을 하신 것을 글을 보고 알았네요. 아마 제가 늦게 문학산책에 참여해서 그런거겠죠.저도 방랑기가 좀 있는 편이라 혼자서 훌훌 잘 떠나곤 합니다. 그냥 외로워서요...남편이 그 시간을 허락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은 생각지 못했는데 작가님 글을 읽곤 감사의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저 같이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만 많았었는데...쯧쯧.많이 배우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장춘희 2016-03-14 20:56	젊은 날에는 외로움이 가끔씩은 달콤하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외로우니까 기운이 없네요. 축하한다는 개인적인 문자를 여러번 썼다가 지웠습니다. 20날 기쁜 만남을 몇배로 키울려고요. 시상식 날 만나요.

김경렬 2016-03-15 03:43	베일속의 장 춘희 작가님! 한거플 벗으셨군요. 잘 살고 계시는 겁니다. 건강 잘 지키시고 여행도 적당히 몸 추스리며 하시길 바랍니다. 나이 들면 중요한것이 육신 밖에 없더이다. 힘내시고 생동하는 봄의 좋은 기운 듬뿍 받으시기 바랍니다.

장춘희 2016-03-16 18:12	구름에 달가듯 사뿐사뿐 앞장서 가시는 김경렬선생님을 따라가자니 숨이 가뿝니다. 많이 보고 배우겠습니다.

정찬열 2016-03-17 12:08	장춘희작가님 안녕하세요 작품의 제목을 보람있는 방랑기 라고 바꿔야할것 같네요 ㅋㅋ 웃자고 하는 예기입니다 저는 지금 3주째 병실에서 댓글을 드립니다 잔병에 효자없듯 저역시 2008년 사고이후 계속되는 병마와 싸우다 이제는 내 한팔의 분신까지 잘라내며 입원중이예요 아무래도 막내 자녀들의 부모나 가족 의지형은 어쩔수없는 산물이 거든요 지금 그렇게 고생많이 하시고 쾌찮으시고 여행도 다니신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항상 건안 하시고 가정에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김종근 2016-03-18 21:03	장춘희작가님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대책없는 방랑기 잘 읽었습니다. 참으로 힘든일 을 격어 오셨네요. 구속감은 누구에게나 있는 듯 합니다. 특히나 병실에 계시니 그 고통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부디 쾌차하시고 열심히 건강 돌보시어 마음껏 여행다니십시요.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특히 만병의 근원 감기 조심하세요.

박목철 2016-05-11 19:41	항암 과정을 지켜 봤기에 어려움이 상상이 갑니다. 8차에 걸친 항암치료도 버겁다 생각했는데, 30 차 까지 받으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수술을 하신적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가벼운 정도를 생각했습니다. 장춘희 시인님의 모습에서 힘든 흔적이 보이지 않았기때문입니다. 속으로 삭이시고 이렇게 좋은 글을 담담히 쓰시다니, 좋은 글 많이 쓰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 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김락호 2016-06-28 15:45	시인님 대한문인협회 2016년 여름행사 및 대한창작문예대학 졸업, 대한문학세계 신인문학상 및 한줄 시 짓기 공모전 시상식에 함께 참여해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 축하해주시는 그 마음이 많은 문우님들의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 하시고 좋은 작품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장춘희 2016-06-28 20:26	행사 치르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이렇게 글을 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협회의 많은 분들과 이사장님 수고 덕분으로 좋은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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