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5-08-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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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이야기꾼
어머니는 이야기꾼 장 춘 희

‘소설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돌아가신 소설가 이병주 선생에게 들은 말이다
어머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렇다고 수다스러운 사람도 아니다. 물론 행동이 수선스럽지도 않다. 본인 이야기도 객관성을 가지고 이야기책을 읽듯 아주 재미있게 잘한다.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소설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즐겨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이 저절로 다가앉아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기억력도 천재적이다. 아무리 오래된 일도 그 날의 날씨와 분위기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
올 해로 여든 일곱, 지금도 그렇다.
우리 형제들도 기억이 가물가물 한 일을 어머니에게 물어보면 어떤 것에도 망설임 없이 정확하게 설명을 한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은 ‘숙조여사의 기억력은 녹슬지도 않는다’ 라며 가끔씩 어머니를 놀리기도 한다.

‘사변 때 너의 아버지는 군에 가고 없고’로 시작되는 육이오 때 겪은 시집살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온 이야기다.
전쟁이 나서 아버지는 군대 가고, 어머니, 오빠, 나, 이렇게 남은 세 식구는 고향에 계시는 할머니 댁으로 피난 가서 얼마간을 살았다.
어머니는 매사에 자로 잰 듯 분명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반대로 할머니는 성격이 호방하고 섬세함이 부족하고 선이 굵은 분이다. 그런 할머니를 어머니는 남자가 됐으면 큰일을 할 분이 여자로 잘못 태어난 양반이라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기도 했다.
그런 두 분은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부딪첬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어머니보다 할머니와 더 많은 정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할머니 흉을 보는 게 듣기 싫었다. 마뜩 잖게 듣고 있으면 어머니는 기어코 무기를 내놓았다.

성격이 고약한 고모가 있었다. 막내로 자라서 응석배기에 막무가내였다. 그런 고모와 군대 가고 없는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어머니는 자주 다퉜다.
어머니보다 몇 살 아래인 고모는 ‘우리 오빠, 이건 우리 오빠 꺼’ 하며 어머니가 귀하게 여겨서 감춰둔 아버지 물건을 함부로 꺼내 쓰고는 했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오빠와 핏줄인 내가 올캐 언니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하루는 참다못한 어머니가 고모와 크게 싸웠다.
이 때 할머니가 말리는척하며 은근슬쩍 어머니를 때렸다고 했다.
“ 글쎄 할머니가 말리는 척 하시면서 나를 때리시잖니, 그런데 요즈음 와서 때린 게 아니고 말리면서 어쩌다가 스친 거라고 하시더라, 내가 때린 거 모르고 스친 거 모를까”
이 대목에 가면 나도 은근히 어머니가 불쌍해지고 할머니가 조금 미워졌다.
“오빠는 손자라고 귀애하고 네 옷하고 내 옷은 마구 집어 던지면서 나가라고 하셨어 그 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그 날 어머니는 죽을 결심을 했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나를 업어 키우던 처네를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꽤 먼 거리의 강에 가서 뛰어내려 죽을 생각이었다.
다리 난간 위에서 처네를 뒤집어쓰고 강물에 뛰어 내리려고 얼굴을 가리려는 순간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 강물에 네 얼굴이 보이는 거야’ 얼마나 놀랐던지 기겁을 해서 뒤로 나자빠졌다.
그 때서야 아이들이 생각나면서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전쟁 중에 군대 간 남편은 소식이 없으니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 나까지 죽으면 내 아이들은 고아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지 않을 생각을 하니 이번에는 강물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무서웠다. 그 때까지 악에 받처 무섭지 않던 밤길이 무섭기 시작했다.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오금이 저려서 발걸음이 안 떨어 졌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온 몸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더라’ 그래도 집에 가서 할머니와 고모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무서운 밤길을 걸어서 외갓집에 도착하니 날이 희부염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렇게 끝을 맺는 이야기 끝에는 눈물까지 보이며 기어코 나를 어머니 편에 세웠다.
“오빠는 손이 귀한 집 손자여서 내가 없어도 할머니가 잘 키워 주시겠지만 너는 내가 없었어봐라 고아나 다름없지, 그 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다 너를 위해서야’ 하는 뜻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음을 어린마음에도 알아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솜씨에 넘어가 잠깐 동안이지만 할머니를 배신한 적도 있었다.
그 이 후로도 꽤 클 때까지 어머니 말을 잘 안 듣는 일이 생기면 이 이야기를 꺼내서 나를 순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들었다.

‘사변 때 내가 겪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데 공부가 모자라서 못쓴다’ 하며 어머니는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닌 것을 늘 한스러워 했다.
이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내가 커서 엄마 대신 엄마 얘기를 글로 써주지 뭐’
어머니가 얘기하던 ‘글’이라는 것이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문학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듣기 시작한 이야기에서 내 마음에 문학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내 문학의 근원은 어머니의 이야기로 부터다.
그리고 비록 글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는 소설가였다.

김경렬 2015-08-09 20:11	어머니께서 장춘희 작가님의 스승님이시군요 훌륭하신 어머니의 따님입니다. 그옛날의 어머니가 아니시고 신여성 이셨군요. 그 어머니의 딸이였기에 작가님이 되신겁니다. 어머니께 감사드려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운날 몸조심 하시고 서재에 묵향 가득 하시기 바랍니다.

백낙은 2015-08-09 20:32	저의 어머님도 불학이셨으나 늦게 교회 나가셔서 글을 터득하셔서 성경은 물론 많은 소설책을 읽으시고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셨답니다. 어머니는 마음의 고향입니다. 고향이 그립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없는 고향은 이미 고향이 아니더군요. 소설가 셨던 어머님을 닮아 작가가 되신듯 합니다. 어머니께 들은 이야기들을 수필로 잘 풀어 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건필, 승필, 향필 하시기 빕니다.

정찬열 2015-08-14 19:09	피는 무시를 못한다는 건 틀림없는 말입니다.소설가 달변가의 어머님이 계셨기에 장춘희 작가님이 그피를 이어받아 작가님께서는 장래가 촉망되시는 작가로 기대됩니다. 예전에 우리네 부모님들은 대부분 배움의 혜택을 받지못하시고 살아오신 분들이지요 어머니는 이야기꾼 감동으로 배독하고 갑니다. 꺾인듯꺾이지않은 무더위에 즐겁고 뜻깊은 연휴가 되세요

정태중 2015-08-15 16:33	어머니가 멋지십니다

장춘희 2015-11-25 12:41	격려에 이제사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첫경험

비단 조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