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8-10-22 11:11

ㆍIP: 112.xxx.199

스위스
스위스, 백 프랑에 무너지다 장춘희

스위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세계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알프스산과 하이디의 요들송이다. 특산품으로는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리는 나이프와 시계가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스위스 은행이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의 재벌과 독재자, 또는 범죄자들의 믿음직한 비자금 금고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통은 은행에 예금을 하면 이자를 받게 되는데 스위스 은행은 오히려 보관료를 받는다. 그 대신 비밀이 보장되고 본인이 아니면 절대 찾을 수 없는 장치가 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의 검은 돈이 들어가고 그 보관료로 은행이 유지된다.
몇 년 전, 스위스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알프스의 유명한 산으로는 융프라우, 마테호른, 리기 산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융프라우를 택했다. 융프라우는 산 정상까지 열차를 이용할 수 있어서 관광하기 좋은 곳이라 생각되었다. 융프라우는 ‘젊은 처녀’라는 의미이며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기도 하고, 스위스 여행의 정점을 찍는 곳이라고도 했다.
융프라우에 오르기 전 날 인터라켄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인터라켄은 융프라우 여행의 관문으로 불린다. 1년 365일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관광도시다. 인터라켄은 호수(laken)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브리엔츠 호수와 튠 호수 사이에 있는 교통요지이며, 융프라우로 떠나는 열차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객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어 주기도 하고, 등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는, 경치가 아주 빼어난 마을이다.

호텔에서 잠시 필요한 것들을 챙겨놓고 저녁밥을 먹으러 시내로 나섰다. 특이한 것은 호텔 직원들도 다른 직장인들처럼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직원들 퇴근 전에 호텔에서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볼일을 봐 두어야 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시내는 북적거리는 관광객들로 생기가 넘쳤다.
인터라켄은 퐁듀라는 치즈가 유명한 곳이다. 퐁듀는 알코올 불 위에 무쇠냄비를 얹어 놓고, 냄비 안에서 뜨겁게 녹아 있는 치즈에 빵을 찍어 먹는 것이다. 퐁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즈이고, 치즈마니아라면 인터라켄에서 한번쯤 먹어 봐야 하는 맛이라고 한다.
퐁듀를 전문으로 한다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정원은 넓었고 나무들은 잘 손질되어 있었다. 저녁 어스름이 남아 있는 해질녘의 이국땅에서 나그네가 되어 생맥주를 마셨다. 나른하게 마음을 간지럽히는 즐거운 기분 때문에 평소 주량보다 조금 더 마셨다. 취기가 적당히 올랐을 때 식당을 나와서 행복한 기분으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호텔로 돌아갔다.
이튿날 새벽,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인터라켄 역으로 나갔다. 계절은 아직 시월이었지만 전 날, 날씨와는 사뭇 다르게 몹시 추운 겨울 아침이 되어 있었다. 역 광장에 있는 마트에서 물과 간식거리를 사서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열차에 올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이라는 융프라우 역까지 가는 기차는 꽤 긴 터널을 여러 개 통과해야 하는 톱니바퀴 식 산악 열차였다. 융프라우를 향해 서서히 움직이는 열차객석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그림 같은 초원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넓은 초원 곳곳에 띄엄띄엄 있는 집들은 모두 동화 속에서나 나올법하게 생겼다. 창문마다 꽃무늬 커튼이 달려있었고, 똑 같은 꽃을 심은 화분이 창틀마다 놓여있었다. 푸른 초원에서는 금방이라도 꽃무늬 원피스에 예쁜 앞치마를 두른 소녀가 요들송을 부르며 나타날 것 같았고, 소녀들의 노래 소리에 양치기 소년들 또한 여기저기에서 화답송을 부르며 나올 것 같은 동화가 저절로 그려졌다.
융프라우로 가는 도중 클라이네샤이텍 역에 내려서 열차를 한번 갈아타야 했다. 마지막 역에 내려서도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얼음 동굴을 통과해야 만년설과 만날 수 있었다. 얼음 동굴을 지나고 나자 매점이 있었다, 그 매점에 우리나라 신라면(컵라면)을 팔고 있었는데 따뜻한 국물과 함께 간편 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국력의 힘을 보는 듯 했다.
드디어 정상에 서서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융프라우의 절경인 만년설을 마주 바라보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경치를 마주하고 서 있다는 감동과, 빼어난 자연 경관이 주는 경건함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산과 자연은 그 자체가 진리이고 무언의 가르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년설을 밟아 보고 다시 열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돌아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은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꼬리곰탕을 먹었다. 스위스의 목축업은 초원에서 방목으로 키운 소들이라서 좁은 우리에 가둬서 사료를 먹여 키우는 소고기와는 맛이 다르다고 했다. 며칠 만에 먹어 보는 한식 반찬에 맛있는 꼬리곰탕 국물을 한 숟가락 남김없이 모두 먹어 치웠다.
점심 식사 후 베니스로 이동하기 위해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우리가 처음 독일에 도착해서부터 타고 다닌 단체 관광 버스였다.
버스가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20분쯤 지났을 때다. 경찰차 한 대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면서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따라 오라는 경찰관의 손짓에 우리가 타고 있던 버스는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도착한 곳은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넓은 주차장과, 마당넓이에 비해 턱없이 작고 볼품없이 생긴 회색 시멘트 건물이었다. 아주 위협적이고 거만스러운 자세의 경찰관을 따라서 회색 건물에 들어갔다가 나온 버스기사의 겁먹은 표정에서 뭔가 일이 크게 잘못 되었구나 싶었다. 차에서 서류를 챙겨서 다시 건물로 들어간 기사는 30분이 넘어서도 나오지를 않았다.
처음에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던 가이드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혹시 떠들었다가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으니 그저 조용하게 있자고 했다. 차츰 시간이 길어지자 버스 안에서는 서서히 공포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공포심도 누르지 못할 일이 생겼다. 점심 때 맛있다고 싹싹 비운 곰탕국물과 짜게 먹은 김치가 물을 켜게 한 탓에 화장실이 급해진 것이다. 긴장감과 공포심으로 참고 있었지만 참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못 참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하는 수 없이 가이드가 건물로 들어가서 허락을 받고서도 행여나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조용조용 숨을 죽이며 화장실을 다녀왔다. 화장실은 또 얼마나 멀리 있는지 그 큰 마당 한 귀퉁이에 있어서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얼마나 놀랐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버스기사가 돌아왔다. 이유는 스위스 법으로 버스기사는 30분 운전을 하고 나면, 30분은 무조건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 걸 지켰는지 조사 받았다고 했다. 우리기사는 그 법을 어기지 않아서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아연 실색할 노릇이었다. 그 간단한 걸 조사하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하며, 수 십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버스에 인질로 잡아두고서 공포감을 준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더구나 스위스는 세계적으로 관광산업 대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놀랄 일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백 프랑을 내라고 했단다. 그 백 프랑은 버스를 세운 곳에서 부터 주차장까지 에스코트해온 비용이라고 해서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스위스 법으로 정해진 금액인지, 아니면 그 경찰관의 개인적인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그 날의 일은 상식을 뛰어 넘은 사건이었다.
세계 최고의 자연경관인 알프스 산을 안고 있는 스위스가 고작 백 프랑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나 생각하는 순간, 내 가슴에서 융프라우의 하얀 설산이 시커멓게 무너져 내렸다.

김경렬 2018-10-23 16:39	멋진 여행에 먹물을 끼얹은 스위스 경찰이 한심 합니다. 그 나라 경찰의 엉뚱함이 메달감이로군요. 작가님 여행기 부럽고 멋집니다.

정찬열 2018-10-23 20:33	장춘희 작가님 멋진 여행 하셨군요 제가 1993년6월에 관광열차를 타고 스위스 샤넬 마을에서 몽블랑 4807m산의 관강을 위해 엘레베이터를 타고 2차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걷고 내려 정상에서 보는 설경을 참으로 좋았는데 작가님은 몽블랑 정상을 그것도 산악 열차를 타고 좋은 여행 하시였는데 관광의 나라 스위스에서 생각지 못한 놀란 가슴을 헤아려야 했군요 "스위스 백프랑에 무너지다" 멋진글 잘배독했습니다. 오색단풍이 물드는 계절에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틴광촌에서

상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