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6-12-22 13:40

ㆍIP: 210.xxx.110

만가

만가(輓歌) 장춘희

시어머니는 살아생전 주변 사람들에게 ‘복노인(福老人)’이라 불렸다.
먹고 살만 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보태어졌겠지만 그것보다는 그 분이 지닌 인품 때문에 그렇게 불리어 졌을 게다.
경상북도 안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안동 김 씨 친족동네다. 멀게도 가깝게도 연이 지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지만 어쩌다 남의집살이로 흘러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이들을 품에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하며 마을에서 따뜻이 대하도록 배려하였다.
부모 없이 커서 시집 장가가는 사람들에게도 세간낼 때 살림에 보탬이 되도록 곡식이나 장무새를 챙겨 주기도 했었다. 특별히 누구에게 잘하고자 지어먹고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하고는 본인이 한 일에 생색을 낼 줄도 몰랐고 그냥 타고난 천성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인심 좋은 분이 돌아가신 날은 음력으로 섣달이었다. 그 해 겨울 추위는 몇 십 년만이라고 뉴스에서 날마다 떠들었고 세상은 얼어붙게 추웠다.
30년 전 장례문화는 요즈음처럼 병원에서 치르는 일이 대중화 되지 않았고 집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효심이 남달랐던 자식들은 지금 돌아가셨어도 아마 집에서 모시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서 집에서 모셨을 게다 .
일찍 고향을 떠나 대학공부를 하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그 고장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나 사고(思考)하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 유교정신과 효孝에 대한 마음가짐은 뿌리 깊은 나무들이다

초상 첫째 날 초종(初終)
마당에는 큰 들마루가 놓이고 그 위에 작은 소반들을 산처럼 쌓아 놓았다. 상 위에 차려질 그릇들과 수저 또한 그 숫자 이상이 준비되어졌다.
그 지방은 큰 일로 손님 식사 대접 할 때 겸상 없이 독상으로 대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을 행주질 하고나면 물기가 상에 얼어붙어 행주가 찢어졌다. 또 상위의 상차림들이 살얼음에 흘러내려 음식들이 쏟아져 내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고는 했다.
초상이 나면 마당 한 가운데 밤새도록 피워 두었다가 새벽녘에 끄는 화톳불과,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피워놓은 장작불의 재도 음식상위로 날아들어 상을 새로 차려내는데 한 몫 거들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 마당에서 상차림이나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솜씨도 없고 서열이 낮은 사람들이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방안에서 상복을 짓는다. 음식을 잘하는 이들도 아궁이 불이 훈훈한 부엌에서 음식을 만든다.
집에서 치르는 초상이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하다. 여자들이 해내야 하는 모든 일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은 맏며느리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세월 때문에 누구보다 슬펐을 사람이지만 마음 놓고 상제노릇 할 시간도 없었다.

초상 2일째 소렴(小斂)
운명한 다음날 하는 일로서 시신을 베로 싸서 묶어 입관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절차이다.

초상 3일째 대렴(大殮)
소렴에 싸서 묶은 시신을 입관하는 절차다. 3일째 대렴을 하는 것은 혹
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효성 때문이다.

초상 4일째 성복(成服)제
망자와의 친등 관계에 따라 오복의 제도에 맞추어 상주들이 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 이 날 초상이 나서 처음으로 상복을 입을 때에 제사를 차린다.
참신(參神): 신위에 인사하는 절차로서 모든 참사가 다 같이 두 번 절하고 주부이하 여자들은 네 번 절한다.
상식을 올릴 때 음식은 맵고 짜지 않게 한다. 상주가 곡을 하며 술잔을 올리고 숟가락은 밥에 꼿고 반찬에 젓가락을 올려놓는다. 맏상주가 절을 하면 상제들은 곡을 하고, 숭늉에 밥을 세 숟가락 말아놓고 곡을 하다가 수저를 내려놓으며 재배를 하면 뚜껑을 닫는다.
빈소는 거의 남자 상제들이 지키지만 집안 어른들이나 특별히 인사해야 할 조문객이 오면 여자 상제들도 불려들어 간다.
안과 밖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불려 들어가도 위의 형님들은 앞치마에 손만 닦으면 바로 상제가 되어 구슬픈 곡소리를 잘도 한다.
상식 때도 앞자리에 앉은 큰 형님은 뒤에 엎드려 있는 둘째형님에게 생경스런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자네 부엌에 빨리 좀 가봐라 국솥에 국이 금방 넘을 것 같더라”
그러면 둘째 형님도 언제 울었느냐 싶게 냉큼 울음을 그치고는 부엌으로 내 달린다. 아랫 동서에게 명령을 내린 큰 형님은 곧바로 고개를 돌리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눈물도 없는 곡소리를 ‘아이고, 아이고’ 예사로 한다.
결혼 한지 햇수로 7년이나 되었어도 명절이나 시댁 어른들 생신, 제사에만 시댁에 내려갔기 때문에 아직 시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시어머니와는 함께한 시간도 많지 않아서 깊은 정도 들지 않았다. 가뜩이나 눈물이 나오지 않아 민망한데 웃기까지 하는 실수를 할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을 막아내자면 뭔가 슬픈 사연을 찾아내야했다.
마구마구 바쁘게 생각을 헤집는데 이미 늦었다. 웃음이 터져나와버렸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눈물을 감추는 척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방을 뛰처 나왔다.
방 문 앞에 서 있던 조카딸도 내 뒤를 따라 나왔다. 사방에서 바라보는 눈을 피해 우리는 뒤란으로 뛰어가서 숨었다. 조카딸은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자주 봐온 나도 우스운데 처음 보는 숙모가 안 우습겠나, 숙모가 웃을 줄 알았다, 처음 보면 다 웃는다”
우리는 웃음을 삭이느라 한참을 뒤란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초상 5일째 발인(發靷)
이른 아침, 고인을 애도하고 명복을 비는 갖가지 글이 적힌 수 십 개의 만장(輓章)이 깃발처럼 펄럭이며 대문 앞에 세워졌다.
알록달록 종이꽃으로 장식된 상여가 그 앞에 놓이고, 상여 앞에 혼백을 모신 발인상이 준비되었다.
맏상주가 분향한다. 집사가 술잔에 술을 따라 맏상주에게 건넨다. 맏상주가 받아서 발인 상에 놓는다. 모든 상제와 친척들이 엎드리면 옆에선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그런데 절을 하고 일어설 때 여자 상제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추워서 너무 많이 껴입은 옷 무게에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뒤로 넘어진 것이다. 누가 볼세라 급히 일어서려다 재차 넘어져서 두 손을 허공에 대고 허위적 거렸다.
오뚝이 같은 모양이 되었으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일으켜 세워야 겨우 일어 설 수가 있었다. 넘어진 본인, 부축해 주는 사람,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엄숙하고 웃어서는 안 되는 자리에서 터지는 웃음은 전염도 잘되고 참을 수 없게 될 때가 있지 않은가. 엄숙한 앞자리 남자 상제들에 비해 뒷자리는 민망하기 짝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 때 뒤에 서 계시던 집안 어른 한분이 말씀하셨다.
“아,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신 어른이라 웃고 보내 드려도 된다”
재치를 발휘하신 집안 어른덕분에 하마터면 흉이 될 뻔한 자리가 훈훈하게 무마가 됐다.
시어머니 연세가 일흔 셋, 그 시절에는 천수를 누렸다고 했다.
발인제가 끝나고 운구가 시작되었다. 붉은 색 명정(고인의 성씨를 적은 깃발)이 앞장서고, 영정과 요여(혼백을 넣은 작은 가마)가 따르고, 만장이 뒤를 이었다. 만장 뒤로 상여가 따르고 상여 앞에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상두 가를 불렀다.
에이 이 간다 간다 나는 간데이
부데 부데 잘 있거레이
에이여,
상여를 맨 상여꾼들이 청승스럽고 구슬픈 소리로 뒷소리를 받았다.
북망산이 멀다드니 대문 밖이 하적 일세
에이여 이 후후후
아이고 아이고 우이 갈꼬
에이여
대궐 같은 내 집을 야 원앙 겉이 비워두고 북망산천 나는 간데이
이하 생략
죽은 이의 저승 가는 길이 환하게 밝으라고 산사람들이 그저 형식적인 소리로만 하던 곡소리가 구슬픈 상두 가를 들으면서부터는 갑자기 곡소리가 애간장이 끓는 소리로 변했다.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숙모님, 고인의 죽음을 진정 안타까워하며 저마다 아이고 뒤에 추임세가 들어가면서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런 초상 분위기와는 별개로 청승을 담은 상두 가의 구슬픈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부터 내 기억은 어떤 끈을 따라가고 있었다. 희미했던 기억이 차츰 모양을 갖춰 오면서 온 몸으로 아릿한 아픔이 번졌다.
어릴 적 고향 할머니 손에서 클 때 마을에서 새터에 나가자면 곳집이 있었다. 상여를 보관하는 집이었다. 그 집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알록달록 예쁜 색깔에 반해서 옆집 여자아이와 자주 들어가 놀았다.
그 것이 움직일 때는 앞에선 사람이 종을 흔들며 구슬픈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울면서 따라가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겨우내 집안에서 놀다가 햇살이 자랑자랑한 봄날이 되면 얕트막한 앞산에 나가 놀았다. 그러다가 산소가 눈에 띄기라도 하면 우리는 막대기를 짚고 허리를 숙여서 아이고 아이고 상제 흉내를 내면서 놀았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서러웠던 것일까, 그런 슬픈 소리들이 그냥 마음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기억의 끈을 따라 가슴 저 깊숙한 곳에서 묵직한 것이 치받쳐 올라와 목으로 터져 나왔다.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린 시절이 견딜 수 없이 그리웠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절의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렸다. 내 의지로 막아낼 수 없는 소리가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상여를 따라가며, 상두 가에 먼먼 세월 저편의 그리움을 얹어서 서럽게 울었다.

나는 지금도 ‘장사익’하면 모두가 생각하는 ‘찔레꽃’보다 장사익이 부르는 ‘하늘가는 길’이 좋고, ‘정태춘’의 대표곡 ‘촛불’보다 ‘사망부가’가 더 좋다.
만가라는 노래로 내 머리에 정리되기 이전부터 그런 소리들이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에 엄마가 ‘타박타박 타박 네야’나 ‘울밑에선 봉선화야’만 불러줘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아마 내 나름의 한이라는 정서가 어린 시절 엄마와 헤어져 사는 동안 형성 되었나보다.

*만가(輓歌): 상엿소리 장례식 때 상여를 메고 가면서 상여꾼들이 부르는 구슬픈 소리*상여 메김 소리, 요령잡이 소리, 향도가라 부름.

*위의 상두 가는 ‘대도 둠 소리’라고 하며 경상북도 ‘청송추현상두소리’다.
만가의 일종으로 상여를 메고 갈 때 하는 노래. 죽은 자의 명복을 빌고
살아있는 사람이 오랫동안 살고 싶은 소망을 담은 구전 민요로 상례 의
식에서 부르는 ‘상례 의식요’이다

백낙은 2016-12-22 19:54	장춘희 작가님. 만가(輓歌)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많이 보았습니다만 내가 예수를 믿고 기독교 화 하다보니 옛 것이 많이 잊혀져 아쉽습니다. 더우기 요즘은 너무 간소화 되어서 망자에 대한 예우가 소흘한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 민족의 전통 ‘상례 의식요’들이 잘 보존 되었으면 합니다. 작가님 건강 유념하시고 은안하심을 기원합니다.

장춘희 2016-12-23 18:51	백낙은 선생님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잃어가는 우리의 전통 문화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는 거의 축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전통을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우리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건강하십시요.

김경렬 2016-12-24 04:23	어릴때 병이들어 갑자기 나타난 할머니가 온집안을 우울하게 만들고 엄마마져 누워버렸답니다. 집안이 괴괴해서 들어가기 싫었었지요. 살림하던 언니는 늘 한숨만쉬었지요.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상주노릇을 하시는데 목청껏 목이다 쉬도록 곡을 했었지요. 어린눈에 참 이상 했어요. 오늘 만가를 배독하며 그옛날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장춘희 작가님은 지혜로워서 잘 치루셨구려. 재미있게 잘 담아내셨습니다. 우리의 전통이 사라지는 안타까움 동감 입니다. 감기 털어 내시고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정찬열 2016-12-24 21:20	장춘희 작가님! 안동김씨의 5일탈상 단숨에 읽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도 영명하게 잘 기억해 쓰신것인지 저희 지방에서야 특별한 분이 아니면 대부분 3일장으로 끝내는게 보통인데 안동의 양반네 고향의 장례풍습을 잘알게된 게기가 된것같습니다. 비롟지금은 그런 전통은 찾으려도 힘들지만 요즘세대들에게 지금껏 전해 내려온다면 아마 기절할걸요 늘 건안 하시고 후작을 기대합니다.

노복선 2016-12-26 20:50	장춘희 작가님의 수필 만가를 읽으며 좋은 이야기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빠져 들며 읽었습니다 5일장을 지내 본 적이 없는 집안이라 새로운 공부를 하면서요 소재를 뽑아 낸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며 읽었습니다~

박목철 2017-01-07 10:53	예전에 장례를 치루는 절차를 스토리에 엮은 한국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탓 에 관혼상제에 관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작가님의 만가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글은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재미가 있습니다. 구성도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장례 절차와 장례식 풍경, 작가님의 얘기까지, 훌륭한 글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장춘희 작가님,

황양국 2017-08-11 10:00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류등자 2017-09-16 21:52	장춘회작가님 길가도 길은 철로길 같은 글쓰시느라 수고가 참많으셨네요 몇날며칠을 외워두시고 상각 하시며 기로에 서겠읍니다 설향에공감합니다 작가님의 글 휼륭하시고 잼나게 읽고 머리에 이고 내려갑니다 고운밤 되십시요

할머니의 여행

노년의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