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6-07-27 21:41

ㆍIP: 112.xxx.201

금향씨의 실종
금향씨의 실종 장 춘희

안금향씨는 1926년 생이다.
경상북도 북부 지방 면소재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두 돌이 채 되기도 전에 아버지가 결핵으로 돌아가셨다.
금향씨는 외동딸로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금향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우체국에 근무하게 되었다.
조금 헤픈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녀는 천성이 밝고 활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얼굴은 그다지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그 시절 그 지방에서는 드물게도 양장을 하고 다니는 멋쟁이였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 준 유산은 별로 없었다. 다만 살고 있던 한옥 기와집이 꽤 큰 편이었다. 어머니는 그 집에다가 하숙을 했다.
그 곳은 강원도로 가는 길목이여서 탄광에서 광부일이나 산판에 벌목 일을 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 다녔다. 몫이 좋은 어머니의 하숙은 장사가 잘 되었다.
큰 부자는 아니어도 그런대로 잘 산다는 소리를 듣고 살 정도는 되었다.

금향씨는 나이가 차서 결혼 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 혼사 문제를 두고 여러 가지 걱정이 많았다. 이웃사람들은 자유분방한 금향씨의 성격을 두고 얌전하지 못하다고 뒤에서 흉들을 봤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손에서 자란 것도 흉이었고, 하숙집에 뭇 남자들이 드나든 다는 것도 흠이었다. 그래서 중매쟁이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의 하숙집에 트럭을 가지고 강원도 산판에 나무를 운송하러 다니는 김현구씨가 하숙을 하게 되었다.
김현구씨는 트럭 운전하는 사람답지 않게 인물이 잘 생기고 귀티가 났다. 더구나 김현구씨는 부모 형제도 없는 노총각이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란 사실이 무엇보다 어머니의 마음을 끌었다.
나이 차이는 어머니에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많은 신랑을 만나면 딸의 허물을 덮어줄 것이고, 딸의 성격으로 봐서 시부모 섬길 주제가 못되고 하니 김현구씨가 딱 안성맞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김현구씨에게 공을 들였다.
이런 어머니의 걱정하는 마음과는 달리 금향씨는 여전히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해서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쏟은 정성덕분으로 김현구씨와 안금향씨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고 두 사람은 김현구씨 직장을 따라 영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따뜻한 가정을 꿈꾸던 김현구씨에게 호방하고 싹싹한 금향씨는 더 바랄 것 없이 따뜻한 안식처였다. 금향씨에게도 다정다감하고 섬세한 김현구씨의 부드러움은 선머슴 같았던 금향씨를 조신한 여자로 만들었다.
두 사람은 꿈같은 신혼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금향씨가 가정에 안주하는 기간은 그다지 길게 가지 않았다. 첫 아들과 둘째 딸을 낳고부터 금향씨는 외출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영주는 작은 지방 도시였지만 지리적으로 시장경제가 활발한 도시였다.
1940년대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상징이라 불리는 철암, 태백으로 가자면 반드시 영주를 거처야 했다. 태백시에서 캔 무연탄 운송도 영주를 거처 서울, 부산등 대도시로 운송되었다.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광부들, 또 돈을 벌어서 광산촌을 떠나는 사람들도 그 곳을 거처야 하는 경유지였다.
그 당시에는 광산촌 광부들의 한 달 월급이 도시 노동자의 세 배쯤 되었다고 한다.
영주는 광산촌에서 소비하는 쌀, 의류등 생필품을 납품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히 씀씀이도 커지고 유흥가도 늘어났다.

사치한 영주는 놀기 좋아하는 금향씨에게 신세계였다.
사교적이고 친화력이 좋은 금향씨는 사람들과의 사귐도 좋아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서투른 집안 살림살이에 조금 붙여가던 재미를 팽개치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김현구씨는 직업상 출장이 잦았다. 자연히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다. 부모 없이 자란 김현구씨는 가정을 등한시 하는 아내의 행동을 특히 못견뎌했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남편의 바램을 금향씨는 외면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주부가 내 팽겨 처 둔 집안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유순한 김현구씨는 아내를 붙잡고 부탁도 하고 달래기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밖으로 도는 아내의 바람기를 잠재우지 못했다. 친정어머니도 딸을 야단도 하고 달래기도 해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위태로운 가족관계가 지속되어가던 어느 날 부턴가 김현구씨가 집에 들어가지 않는 횟수가 잦게 되었다. 김현구씨에게 단골 술집이 생겼다. 괴로운 마음을 위로받던 김현구씨가 그만 술집 기생과 정이 들고 말았다.
착실하던 남편의 행동에 놀란 금향씨가 남편을 집안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다. 김현구씨는 아주 집을 나가버렸다.
그래도 금향씨는 자신감을 보였다. 그동안 남편의 태도가 늘 온화하고 자기에게 다정하던 사람이어서 자기가 말을 하면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려니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동안 금향씨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주 냉정하게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당황한 금향씨가 집에 들어 앉아 살림에 손을 대고 아이들을 돌봤지만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금향씨는 남편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도와 달라고 부탁도 해봤다. 친구들도 진정으로 안타까워하며 김현구씨 마음을 돌려보려고 노력해 봤지만 허사였다.

어느 겨울밤 김현구씨는 트럭에다가 새 여자를 싣고 영주를 떠나버리고 말았다. 이에 격분한 금향씨는 아이들 삼남매를 김현구씨에게 데려다 줘버렸다.
막내는 아직 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 주변 사람들은 막내만이라고 엄마가 데리고 키우라고 말렸지만 금향씨는 듣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 상처를 보듬고 난 금향씨는 앞으로의 생활을 위해 작은 구멍가게를 차렸다. 얼마동안은 착실하게 장사를 하는 듯 했으나 그 성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게는 문을 여는 날 보다 닫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러다가 젊은 남자를 사귀게 되었다. 그 남자는 직업 군인으로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직업도 없었고 동네에서 망나니로 통하는 성격이 사나운 사람이었다.
직업도 없고 수입도 없는 그 남자는 금향씨 구멍가게에 얹혀살게 되었다. 그 남자는 남들 보는 앞에서도 금향씨 남편 노릇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금향씨가 민망해서 나무라면 폭력도 행사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큰 아들이 군대 간다고 어머니를 뵈러 왔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군대에 갈 나이는 아니었지만 해군에 자원입대 한다고 했다.
큰 아들이 가져온 소식은 참혹했다. 세 살짜리 딸은 새엄마의 방치된 육아로 배탈이 나서 죽었다고 했다. 큰 딸은 새엄마의 학대를 못견뎌서 서울로 도망가고 없었다.
아들이 다녀가고 몹시 상심한 금향씨는 가게 문을 닫아걸고 앓아누웠다.

아들이 다녀가고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전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부대 작전중에 아들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금향씨는 까무라쳤다.
그 뒤로 금향씨는 술독에 빠져서 폐인처럼 살았다.
가게는 제대로 장사를 하지 않아서 처분을 했고, 수입이 없어지고 나니 총각의 행패는 더 심해졌다. 동네 사람들 부끄러워서 더 이상 그 고장에서 살 수 없게 된 금향씨가 어느 야밤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금향씨가 사라지고 한 달 후 쯤 그 아들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작전 도중 부상을 입고 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전사자로 분류되어 전사 통지서가 잘못 나갔다고 했다.
기가 막히게도 엇갈리는 운명이었다.
아들은 휴가기간 동안 여기저기 미친 듯이 어머니를 찾아 다녔지만 어디에도 어머니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일주일의 휴가 기간이 끝나서 아들은 어쩔 수 없이 풀이 다 죽은 모습으로 부대로 돌아갔다.
그 이 후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은 안 되었지만 풍문에 의하면 형편없이 초라한 몰골을 한 금향씨가 어린아이를 업고 강원도 어딘가를 떠도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또, 강원도 영월 장터에서 보았다는 꽤나 구체적인 소문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금향씨의 소문을 들을 수 없었다.

김경렬 2016-07-28 00:21	단편소설을 올리셨습니다. 궁금해서 한달음에 눈도 못떼고 배독 했네요. 재미 있습니다. 더위에 건강 하시지요?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백낙은 2016-07-28 10:53	장춘희 작가님. 단편이지만 사실적인 묘사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금향씨도 찾고 가족이 함께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삼복더위에 건안하시기를 빕니다.

정찬열 2016-07-29 22:59	장춘희 작가님! 참 깊이있는 글 재미나게 배독했습니다. 사방팔방으로 추적하여 그녀의 실종이 끝나지 않게 조흔후탄 기다려 볼께요 무더운 여름 잘보네시기를 기원합니다.

장춘희 2016-07-30 18:27	《Re》김경렬 님 , 삼복 더위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많이 부족한 글인데 올렸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춘희 2016-07-30 18:29	《Re》백낙은 님 , 안녕하시지요? 아직은 미숙하다 싶어서 조금 더 손봐서 올리자 싶었는데 성급하게도 올려봤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춘희 2016-07-30 18:35	《Re》정찬열 님 , 건강하시지요? 아름다운 문체에 감동해야 되는데 금향씨의 비극적인 운명에 가슴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부족한 글에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춘희 2016-07-30 18:37	《Re》정찬열 님 , 앗, 문체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많이 부족하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석희 2016-09-17 20:58	장춘희 작가님! 참으로 맛난 글을 배독하였습니다. 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복선 2016-10-09 11:59	장춘희 작가님! 아주 재미있게 단숨에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군더덕이 없는 깔끔한 문장력이기에 지루함이 없었습니다 금향씨의 남편처럼 원래 착하고 순한 사람이 한번 돌아서면 더 냉정하지요 제 생각에는 그런 분들은 그런 결단을 내릴 때 까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심사숙고 했기 때문이지요 금향씨의 소식을 다음 시리즈에서 기대 해 보아도 될까요? 즐거운 일요일 오후가 되시길 바랍니다~

노년의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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