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장춘희
ㆍ작성일	2016-07-16 08:18

ㆍIP: 112.xxx.201

끈
끈

하나뿐인 아들아이는 성격이 까칠하고 아주 독립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하든 남에게 의존하기를 싫어하고 ‘아야’가 해야 했다. ‘내가’라는 발음도 미처 안 되는 나이에 자기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아야’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는 성격대로 무엇을 얻고자 할 때도 울거나 함부로 떼를 쓰거나 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네 살 때 수두를 앓았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평소와 다르게 엄마를 반기지 않고 엎드려서 얼굴을 들지 않았다. 아이 보는 누나가 ‘얘가 아까부터 엎드려서 얼굴을 안 보여 준다’고 한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아이를 안아 일으켰더니 왕,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 얼굴 전체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아이는 자기가 뭔가 잘못한 게 있어서 얼굴에 이런 게 난 거 같다며 울면서 자기 얼굴에 대한 설명을 한다. 네 살배기 같지 않은 표현에 놀랐다.
첫아이라 나도 경험 없는 초보 엄마였다. 아이를 업고 무조건 병원으로 내달렸다. 다행히 큰 병은 아니고 아이또래에 앓을 수 있는 가벼운 유행성 전염병 수두였다.
아이는 의사의 설명대로 얼굴을 만지지도 않고 잘 때도 조심해서 잤다. 수두가 다 나을 때까지 보채지도 않고 의젓하게 잘 견뎌서 흉터 하나 없이 잘 나았다.

시어머니 일 년 상(小祥) 때 일이다. 음력 섣달 추위는 맹렬한 기세였고 그 날은 눈까지 내렸다. 아침부터 치르는 제사상 차림과 손님 접대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저녁이 되니 추위와 피로감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 때 시숙모님이 불러서 따라갔더니 ‘자네가 병이 날 것 같아 내가 데리고 나왔다. 하시며 작은집으로 데리고 갔다.
바쁜 일손에서 오래 빠져 있으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따뜻한 아랫목이 끄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었다. 한 짐이나 되는 옷을 입은 채로 반 실신 상태가 되어 쓰러졌다.
곧바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가 몸의 피곤이 조금 풀리자 가물 하던 의식 끝에 잡히는 게 있었다. 북새통에 두고 온 아들아이였다. 홀로서기를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잠이 들 때만은 엄마 없이 잠을 못자는 다섯 살밖에 안된 아이다.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나는데 뭔가 머리에 닿는 게 있었다. 내가 베고 자던 베게에 머리를 얹고 아이는 거꾸러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 시절 시댁 동네는 전기도 없어서 밤이면 온 마을이 캄캄한 굴속처럼 어두웠다.
아이를 안으며 ‘어떻게 엄마 찾아 왔어?’ 물었더니 아이가 잠결에 ‘엄마 냄새가 났어’ 한다. 누군가 데려다 줬는지 아이 혼자 찾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삼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표현에 감동을 하곤 한다.

고등학교 때 강북에 살면서 강남으로 학원을 보냈다. 보낸 게 아니라 데리고 함께 다녔다.
갇히고 구속당하는 것을 유별나게 싫어하는 아들이 버스타고 다니겠다는 그 자유마저 허용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가는 길, 오는 길에 노는 맛에 빠지기라도 할까봐 그런 생각조차 못하도록 붙어 다녔다.
참다못한 아들이 반기를 들었다. 책을 몽땅 싸서 아파트 쓰레기통에 처넣어 버리고는 대학을 안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나는 다시 그 책을 가져와서 정리를 하고는 ‘네가 내 아들인 이상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으름장을 놨다.
그 때 나는 무슨 짓을 했던가? ‘부모의 사랑은 자식을 한 개체로 홀로 서게 할 때 비로소 완성 된다’ 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 아들은 유난히 홀로서기를 원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참 어리석은 엄마여서 더 많이 클 수 있는 사람을 작게 만들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면 지금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다.
대학을 가고 나면 그 다음 자유를 주자, 하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대학 입학 후로 미루어 놓은 것이 잘못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은 지금도 후회와 함께 나를 몹시 아프게 한다.

대학 때 해외 연수라는 명분을 주고 캐나다에 다녀오게 했다. 자기 안에 방랑기도 퍼내고 부모 간섭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서 누리는 자유를 주고 싶었다. ‘놀기,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싫도록 놀아 보라고 했다.
아들은 이삿짐 보따리만큼의 짐을 싸서 떠났다. 그렇게 떠난 아들은 집으로 연락도 자주 안했다. 일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왜 연락을 자주 안했느냐고 했더니 집 생각 별로 안 났어 한다. 다른 표현으로 바꿔 말하자면 ‘엄마 생각 별로 안했어’와 같은 표현이다. 아들은 이때까지도 엄마한테 대한 감정이 덜 풀려서 엇나가는 말을 자주했다.
아들은 육군으로 군대를 갔다. 강원도 고성 최전방 비무장 지대로 배치되어 간 아들은 자주 편지를 보내왔다.
맨 처음 보내온 편지는 길고 긴 장문의 편지였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그 눈물 끝을 따라갔더니 아침마다 저를 깨울 때 쓰다듬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그 끝에 매달려있었다’ 는 감동적인 글이었다.
평생 집이 그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집이 몹시 그립다는 내용도 있었다. 아들의 군복무 기간 동안 우리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참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이다음 장가가서 자식을 두면 엄마 같은 교육방식으로 안 키우고 말같이 소같이, 들로 산으로 막놓아 키우겠다던 아들은 지금은 결혼해서 분가해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들과 통화 할 일이 있었다. 밤이 조금 늦은 시간이라 당연히 집에 있으려니 했는데 마트에서 장보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운전 중이구나 싶어서 얼른 끊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했다. 며느리와 통화중에 수화기 저편에서 두 돌이 조금 지난 손녀딸 아이의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차 안보다 넓은 공간에서 나는 소리다. 함께 장봐서 집에 가는 길이겠거니 했는데 아이와 며느리는 집에 있었다.
손녀딸이 딸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까칠한 내 아들이 혼자 딸기를 사러갔단다.
잠시 후, 현관 벨 누르는 뚜뚜 하는 음이 들리고 ‘아빠다, 아빠가 딸기 사왔다’ 까르르, 숨넘어가게 기뻐하는 손녀딸 아이의 드높은 목소리가 들린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마음에 확 안긴다.
밤톨만한 어린 딸이 딸기가 먹고 싶다고 초 겨울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마트를 다녀오는 내 아들, 아니 내 끈. ‘별순이, 달순이’가 하늘 까지 타고 올라간 동앗줄 보다 더 질긴 생명의 끈, 우주의 끈으로 이어진 내 끈, 그 끈은 그렇게 또 저쪽에서 또 다른 끈으로 이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감동이 파도를 탄다.

장 춘희

정찬열 2016-07-16 11:16	엄마와 자식간에 끊을수 없는 끈 영특하고 先見之明뛰어난 모자간의 동앗줄 보다 더 질긴부녀간의 생명의 끈 아름답고 가슴뿌듯한 감동어린 글을 배독했습니다. 늘 건안 하시고 즐거운 여름 나세요

백낙은 2016-07-16 20:18	장춘희 작가님. 안녕하세요. "끈" 으로 이어진 모자관계를 잘 보았습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까닭 없이 눈물이 흐르는데 그 눈물 끝을 따라갔더니 아침마다 저를 깨울 때 쓰다듬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그 끝에 매달려있었다’ 라는 표현과 "우주의 끈으로 이어진 내 끈, 그 끈은 그렇게 또 저쪽에서 또 다른 끈으로 이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표현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모자지간의 핏줄 만큼이나 끈끈하게 사랑의 끈과 의지와 정서의 맥락까지 잘 이어지는 듯하여 참 좋습니다. 파탄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이 끔직한 사회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이라 여깁니다. 감사합니다. 은안하소서.

김경렬 2016-07-16 22:51	끈끈한 아들과의 끈이 대를 이어 손 에게도 이어짐에 감개 무량 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늘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장춘희 2016-07-27 21:35	《Re》백낙은 님 , 변변찮은 글에 칭찬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다른 글에도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장춘희 2016-07-27 21:37	《Re》정찬열 님 , 몹시 무더운 날입니다. 건강 잃지 마시고 건필 하십시요.

장춘희 2016-07-27 21:38	《Re》김경렬 님 , 오랫만입니다. 여전하시지요? 항상 앞선 걸음 흉내도 내기도 어렵습니다. 열심히 따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박목철 2016-11-27 12:44	끈이라는 제목에 무슨 글일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아드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따사해 지는 느낌입니다. 유난히 으젓한 아드님이셨군요, 유전의 대물림, 가고나도 영원히 이어지는 신비함이기도 합니다. 담담하게 풀어내신 글에 마음을 쉬어 갑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전병일 2019-05-31 13:14	등단작 "끈,, 잘읽었습니다 저도 장손에 장남 입니다 자식을 키워보니 부모맘대로 되지않더군요 자식 키우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본인들 하고싶은것 하라고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 자식을 경험으로 손자들은 잘키울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아니라서 할수도 없습니다 등단작품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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