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박정근
ㆍ작성일	2015-04-20 09:59

ㆍIP: 183.xxx.242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박 정근

묵은해를 보내는 아쉬움보다는
새로 맞이하는 새해에 대한 부푼 희망 때문인지
거리마다 유난히 많은, 신년을 준비하는 인파로 북적이던 1992년 1월의 마지막 날,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흰 눈을 펑펑 쏟아 낼 것처럼
꾸물꾸물 거리고 있었다,들뜬 거리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한가로운 사무실에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아내는 첫 아이 임신 7개월째, 출산까지는 아직 3개월쯤 남아있었다.
몸이 퉁퉁 붓고 혈압이 급격하게 상승하기를 반복하는 임신중독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산모와 아이를 위협하는 그 증상과의 질긴 싸움을 잘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새벽부터 이어지는 깨질듯 한 두통도 복중의 태아 걱정에 흔한 두통약도 먹을 수가 없는 상황,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며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서둘러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산모도 태아도 모두 위험한 상황이라니...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가 있어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병원으로 가기위해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지만
차량과 인파로 가득한 도심에서 그 시간에 택시를 잡는 건 너무 어려웠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차 키를 집어 들고 나가는 걸 본 직원들의 걱정과 만류를 무릅쓰고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어떻게 왔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없이 달려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 20분쯤,
아내는 이미 중환자실에서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긴박한 상황에, 이렇게 아내와 이별을 해야 하는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담당 의사와 수술전 면담에서 아이는 포기해도 좋으니
아내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 봤지만 의사는 아무 대답 없이 무거운 얼굴로
수술실로 들어가버리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간호사를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해달라고 매달려 보지만 돌아
오는 건 냉랭한 침묵이었다.

1분이 1년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간 지 2시간쯤 지나서야 수술은 끝이 났지만,1.18kg. 가늠하기조차 힘든
작고 여린 생명으로 태어난 첫 아이,혈압이 잡히지 않는 아내와 죽음과의 사투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3일이 지나면서 아내의 혈압은 조금씩 안정을 찾았지만.
흔히 말하는 칠삭둥이로 태어난 아이는 중환자실에서 이제껏 들어 보지도 못한 수많은 증상에 시달리며 죽음과의 사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간호사와 동행해서 그것도 하루에 한 번만 면회가 허용 되는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서
첫 아이를 만나던 순간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감격의 순간이면서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는 원망과,정말로 도망치고만 싶던 절망의 순간이기도 했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작은 몸으로 태어나 살려고 애를 쓰는 여린 몸짓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살아야 한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아빠의 절규...,

그렇게 힘든 죽음과의 싸움을 3개월이 넘게 인큐베이터에서 이겨낸 아이가
2kg의 체중이 넘자 조심스럽게 퇴원을 허락받았고 그렇게 집으로 오던 날도 결코 잊을 수 없다.
밤과 낮이 바뀌고 너무나 예민해진 아이 때문에 주방 구석에서 촛불을 켜놓고 조용조용 숨죽여 가며 밥을 먹어야 했던 기억과,대로변에 인접한 집안의 매연이 걱정스러워 집을 놔두고 관악산 근처 공기 좋은 곳의 셋방으로 이사를 가서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런 시간이 흐르고 흘러 취학 통지서가 나왔을 때는, 기쁨보단 걱정이 앞서서 진단서를 첨부해 입학을 1년 뒤로 연기 해야 하는 안타까운 시간도 있었고,
몸도 여리고 마음도 여린 아이라서 초등학교 때부터 관악산을 억지로 오르게 하고 팔굽혀 펴기같은 운동을
억지로 시켜가며 좀 더 강하기를 늘 주문하던 매정한 아비 역할의 아픈 기억도 있었다.
그렇게 아픈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23년의 모진 세월 속에서
따뜻하고 어진 심성으로 잘 성장해준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네가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들른 공방에서의 며칠은 아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서로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바라만 보아도 벅차오르던 감동은
그 작은 몸으로 태어나 180cm가 넘는 건장한 사내가 되어 당당하게 입대를 하는 감사와 축복이 지난 세월의 모진 아픔을 씻어내는 시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사람 구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너무나 의젓하게 성장해서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남자의 신성한 국방의무의 길로 의연하게 떠나가던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빠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오르던지 그 심장 뛰던 소리를 아빠는 죽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구나.
아빠의 꿈과 하고싶은 일 때문에 조금은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 에서도
아빠의 손을 꼭 잡아주며 아빠가 행복한 길이 엄마와 동생도 행복한 길이라며 떨어져 사는 것쯤은 아무상관 없다고. 이제는 내가 엄마와 동생을 잘 보살필 수 있다며 아빠를 위로하며 용기를 주던 사려 깊은 내 아들.
어느덧 민들레 홀씨 같던 가냘픈 아이에서 당당하고 멋진 사나이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네 모습이 아빠의 희망이고 아빠의 자랑이란다.

아들아 이제 아빠는
더 이상 지나간 모진 세월을 원망 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나온 순간순간의 모든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였는지를 가슴으로 기억할 뿐이다.
" 고통 받은 것이 오히려 내게 유익이라 그리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느니라 "
아들아 사랑 한다 또 사랑 한다 내 아들아 !

백낙은

2015-04-20 15:27

박정근 작가님.
아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깃든 멋진 글 감명 깊게 배독하였습니다.
그런 아픔이 있었군요. 2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또 다른 숨은 이야기도 있겠지요.
그러나 오늘 180cm나 되는 건장한 아들로 키워 냈으니 장하십니다. 보람되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고통 받은 것이 오히려 내게 유익이라 그리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느니라"라고 신앙고백을 하신 것을 보니 더욱 흐뭇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담을 넘고 이르는 곳마다 풍성한 열매가 맺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을 식탁의 주인으로 모신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빕니다. 샬롬.


박정근	백낙은 작가님 귀한 발걸음 해주시고 부족한 글에 마음 나눠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뒤돌아 보면 어찌 지나 왔는지 막막하기도 하지만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기회가 될수 있다는것을 배웠던 시간인듯 합니다. 방문에 감사드리며 늘 평안하시고 행복한 봄 맘껏 누리시는 여유로운 시간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4/22 12:36

김경렬

2015-04-20 22:50

박정근 작가님!
배독하는 내내 가슴 졸이며
눈물이 날려고 했습니다
장하신 부모님이십니다.
183cm의 건장한 군인 아저씨가 되어있을
장한 아들입니다.
아드님 덕분에 신앙도 깊어지셨으니
여러 면에서 효자중의 효자군요.
감동으로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박정근	김경렬 작가님 부족한 글,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어질고 착한 아이로 성장해준 아들을 바라보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가 않습니다 칠삭둥이란 우려와 편견을 의연하게 극복하고 멋진 대한민국의 장교로써 열심히 군생활 하는 모습에 지난 시간의 고통은 잊은지 오랩니다 ~ㅎ 다시한번 방문에 감사드리며 늘 평안하시고 행복한 봄날 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4/22 12:43

서수정

2015-04-27 15:20

멋진 아들을 두셨군요
삶의 끈을 단단히 잡고 부모에게 감동을 주는
멋진 아들입니다
자식의 아픔은 나의 아픔보다 큽니다
잘 견디며 자라준 아들이 대견해 눈물이 납니다
멋진 아빠에 그 아들인거죠~~


박정근	서수정 시인님 이곳도 찾아 주셨군요 네~ 부모 마음은 다 똑같을겁니다 함께 해주셔서 기쁨 이구요 늘 평안하시고 향필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4/29 17:47

강사랑 2018-05-30 10:16	아빠의 기도 속에서 아들이 이렇게 잘 자라주었네요. 부모의 바람은 첫째도 둘째도 아이의 건강함이겠죠. 웃음으로 효도한 아들이 대견합니다.

글쟁이와 글 꾼

엄마같은 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