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경렬
ㆍ작성일	2017-11-06 15:37

ㆍIP: 211.xxx.89

당숙모
당숙모
김경렬
담쟁이넝쿨이 하얀 담벼락을 타고 오르다 다홍색깔 옷을 갈아입고 줄기마저 빨갛게 취해있다. 개천가 산책길 옆으로 아파트의 축대가 높다랗다. 어른 키의 두 배가 넘는 축대에 새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그 담벼락에 담쟁이 풀들이 늘어서서 선홍색으로 불타오르는 대형 그림이 수십 폭 이어졌다. 개천 쪽으로는 노란 산국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국향을 마구 내뿜었다. 빨간 담쟁이의 아름다움과 산국향내에 취하며 가을 정취를 한껏 누리는 즐거운 산책을 끝냈다. 국수집에서 뜨거운 멸치국물을 훌훌 들여 마시니 피로가 한방에 날아가는 듯 했다.
집에 돌아와 다과상을 앞에 놓고 tv를 틀었다. 화면에서는 철도 박물관을 소개하며 기관차의 변천사를 방영하고 있었다. ktx에 이어 우리 기술로 만든 고속 열차를 소개했다. 기관사경력이 10년 이상 되어야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ktx 기장들이 높은 경쟁을 거쳐 연수하는 장면도 보여주었다. 문득 어린 시절 시커먼 연기를 뿜어대고 지축을 흔들며 내달리던 기관차가 떠올랐다.
1950년대. 당숙은 그런 기관차를 운전하던 기관사였다. 당숙이 혼인을 하고 우리 집에서 가까운 한 동네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당숙모는 당숙이 출근하면 늘상 우리 집에 와서 점심을 함께 먹으며 놀다 가곤 하였다. 아직 취학 전이었던 조카딸이 아기 때 너무 탐이 나서 속곳 주머니에 넣어 데려가고 싶었다고 했다. 이젠 다 자라서 손잡고 다닌다며 여전히 예뻐해 주었다. 어린 눈에도 당숙모의 예쁜 까매 머리가 신기해서 살짝t살짝 만져보곤 하였다. 당숙모 집엔 우리 집에 없는 맛난 것들이 참 많았다. 그 재미로 자주 당숙모 집에 따라가곤 하였다.
어느 날 엄마 앞에서 당숙모는, 슬픈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당숙모가 웃지도 않고 한숨을 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도 우울해졌다. 엄마무릎에 바짝 붙어 앉아 당숙모 얼굴만 한없이 바라보았다. 엄마는 당숙모 손을 잡고, 별일 없을 테니 너무 걱정 하지 말라며 등을 쓸어주었다.
“여보게, 그 사람이 귀머거리였던 게 문제였어. 듣지 못하면 주위를 잘 살펴야지, 위험한 철로를 리어카를 끌고 무작정 건넌 잘못이 더 큰 게야.”
“그래도 사람이 다쳤어요 성님!”
급정거를 했으니 망정이지 어쩔 뻔 했느냐면서, 엄마는 해결이 잘 될 거라고 당숙모를 위로해 주었다. 급정거를 했지만, 열차 머리가 리어카에 부딛치는 바람에 그 사람이 쓰러져 다리를 조금 다쳤다고 했다. 엄마는 그날 밤 어린 나를 데려가 함께 자라고 했다. 당숙모는 나를 꼭 껴안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렸지만 당숙모의 슬픔이 전해져서 나도 울기 시작했다. 당숙모는 미안하다며 언제 울었냐싶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토닥토닥 잠을 재워 주었다. 아버지는 관내 유지들과 친분이 두터우셨다. 그 일로 지인을 통해 진행되는 사정을 알아보시고, 피해자가 탄원서를 제출해 준다면 판결이 유리하다는 걸 아셨다. 재판소는 우리 집 앞, 길 건너에 있었다. 구치소에 밥을 넣어주는 밥집 아줌마는,‘잘 될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당숙모의 쪽지를 몰래 당숙에게 전달해 주기도 했다. 드디어 재판 날이 되었다. 첫날은 사건의 사실 심리만 끝내고, 두 번째 재판 날! 당숙은 집으로 돌아 왔다. 피해자인 청각 장애인은, 자신이 잘못했다고 선처를 해달라는 탄원서를 판사에게 보냈기 때문에 빨리 석방이 되었다고 했다. 당시는 철로 건널목에 지금처럼 자동 차단기나 안전장치가 없던 시절이라 건널목 사고가 끊이지 않던 때였다. 당숙모는 그 후로도 몇 번의 애간장을 졸이는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눈이반짝이던 아이는 어느덧 여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 때도 당숙모가 찾아와 한숨을 지었고, 그럴 적마다 엄마의 위로와 아버지의 도움을 받곤 하였다. 판사관저가 우리 뒷집이어서 우리 집과는 음식을 서로 나누는 친분이 있었다. 판사의 둘째 딸과는 여학교 친구였기에 매일 그 집에 놀러가곤 하였다. 아버지는 그 판사를 직접 찾아가지는 않으셨다. 친절하게 지내는 사이 일수록 입장을 난처하게 하는 건, 도가 아니라는 아버지의 철칙이 있었다. 사고 때 마다, 항상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시고 그에 따른 수습을 도와주시려고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기도 하셨다. 당숙 내외는 부모님을 많이 의지하셨고 다른 친척보다도 다정히 지냈다. 당숙 댁에는 아들만 넷을 두고 딸이 없었다. 아들 셋, 딸 셋인 엄마를 늘 부러워했다. 그 덕에 당숙모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당숙이 평생 몰았던 그 기관차는 이제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 집은 종가라서 제사가 잦았다. 그때 마다 당숙모가 엄마의 일손을 도와 주셨고 제사가 끝나면 함께 식사를 했다. 육촌 동생인 당숙의 아들은 항상 자기의 수저를 주머니에서 꺼내 식사를 해서 식구들을 웃기곤 하였다. 대견한 일은 그 아들이 당숙의 대를 이어 기관사가 되었으며 부모를 극진히 모신다는 것이다. 지금은 ktx 기장으로 일하고 있다. 당숙모도 어느덧 90의 노구를 이끌고 십 여 명의 손자를 거느린 왕 할머니가 되었다. 새까만 눈이 반짝거려 당숙의 속곳 주머니에 들어갈 뻔 했던 아기는 시인이 되었다. 이제는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어 어쩌다 만나면 추억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아버지는 외아들이셔서 우리에게는 삼촌과 사촌이 없었다. 하여 5촌 6촌은 피붙이처럼 가까이 지냈다.
지금은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주의가 만연되어, 5촌부터는 뜨악한 사이가 되었다. 집안의 경조사 때 만나면, 서로 얼굴을 몰라보기 일쑤다. 이웃사촌이라고들 하지만 선조들은 혈육에 대한 미풍양속을 중히 여기며 8촌까지는 경조사에 빠짐없이 왕래를 하였었다. 우리시대가 지나가면 사촌만 겨우 알아보게 되지 않을까 지레 걱정이 된다. 올 한 해도 벌써 가을 깊숙이 들어섰다. 파란 하늘로 물오리 떼가 수를 놓듯이 줄지어 날아간다. 어디에선가 골목바람이 세차게 몰려와 오색의 단풍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다. 노란은행 알이 후두득 떨어진다.

김종덕

2017-11-07 12:48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섬섬옥수로 지은 비단 한필을 봅니다. 항상 감탄을 하면 읽어보고 잇읍니다. 예, 요즈음은 5촌까지는 잘 알수가 없는 현실이것 같습니다. 저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 집안의 성묘 행사에는 잘 참석하지 못하여 명절 때는 어리둥절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정이 필요한 이때에 정을 좀 쌓으며 지내야 겟다는 이야기를 작가님으로부터 명 받습니다. 노력해보겟읍니다. 작가닌,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경렬	어머나! 일등으로 달려 오셨습니다. 졸작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바쁜 세상이라도 7촌 까지는 챙기고 있지만 우리대에서 끝날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1/7 17:13

백낙은

2017-11-07 15:29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또 멋진 글에서 영화를 보듯 좋은 가족 관계를 보았습니다.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5촌만 되어도
뜨악한 사이가 되기 십상인 시대가 되어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담쟁이넝쿨이 하얀 담벼락을 타고 오르다 다홍색깔 옷을 갈아입고 줄기마저 빨갛게 취해있다"는 표현과 "어디에선가 골목바람이 세차게 몰려와 오색의 단풍을 마구 흔들어대고 있다. 노란은행 알이 후두득 떨어진다."는 표현에 넋이 나간답니다.
책이 다시 돌아올 것 같지 않아서 내일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행복하시길 빕니다.


김경렬	두번 수고를 하시게되어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늘 사랑으로 품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부디 건강 하시고 늘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11/7 17:16

이석희

2017-11-08 08:29

`김경렬`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김경렬 작가님~~~
하루치 드라마를 본 듯 합니다.
드라마를 마주하게 되면 그 속으로 폭 빠져드니까요.
항상 리얼한 필치로 곱게 그려내시는 글들은 열 폭 병풍을 펼쳐보는 것처럼 황홀하게 저를 붙들어 매곤 합니다.
저희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하여 한 집에 아들 하나인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모두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을 뿐더러 용케도 각자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안되는 요상한 특징을 겸하고 있어서 왕래가 뜸한 편입니다.
모든 경조사에 내가 가야만 얼굴을 알아보고 있는 형편이니 이것도 참 불편하기는 합니다.
좋은 교훈의 글 고마운 마음으로 배독하였습니다.
건강 상하지 않도록 유념하시는 날이 이어지기를 빌겠습니다.


김경렬	드라마를 보신듯 하시다니 감사합니다. 친척 잔치에 갔다가 왕래가 뜸한 친척을 몰라보면서 한번 그옛날이 좋았었기에 어릴때 추억을 펼쳐 보았답니다. 날씨가 조석으로 찹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서재에 글향 가득 하시기 바랍니다.	11/8 21:37

김나현

2017-11-10 00:52

김경렬 작가님 안녕하세요
당숙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신 시인님 어릴적
모습이 그려집니다 요즘 사촌 발걸음도 사실
왕래하기 바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시댁이
아버님이 사촌이 안계셔서 공감하면서 8촌까지
왕래하셨다니 부럽습니다
당숙께서 기관차 사고로 힘겨우셨는 데도 불구하고
아드님까지 대를 이어 기관사가 되셨다니
참 감동이고 멋진 모습입니다
파란 하늘로 물오리 떼가 수를 놓듯이 줄지어 날아간다
한폭의 가을 수채화 멋진 작품까지 가득 한아름 안고
감사한 맘으로 발길 돌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김경렬	어머나 예쁜 시인님! 이곳 까지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잠도 설치시고 방문하셨습니다. 송년회에서 만나겠군요. 감기 조심하시고 그때 뵈어요. 삼사합니다.	11/10 06:00

김경렬	오타가 났군요.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11/10 06:05

김상화

2017-11-12 22:02

반갑습니다. 존경하는 김경렬 작가님
글을 읽다 보니 너무도 아름답고 고와서 실은 연 겁어 두 번을 읽었답니다
글 자체도 거리낌 하나 없이 매끄러운 데다 내용은 순수하면서도 감동을
주어 읽는 사람의 심장을 파고드는 듯합니다
어쩜 그렇게 아름답고 감칠맛 나게 빚으셨는지 부럽기까지 합니다
작가님 날씨가 많이 추어졌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김경렬	어서 오셔요, 김상화 작가님! 늘 위험한 산행도 즐겨 하시며 정보를 정확히 전해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앉아서 함께 명산 순례를 하는 셈입니다. 졸작을 연거퍼 배독해 주심에 영광입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늘 행복 하시기 바랍니다.	11/13 10:42

박목철

2017-12-01 09:55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국에서 철도박물관은 가보지 못했지만
일본의 철도 박물관에는 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 옛 기차가
다 일본에서 만든것이기 때문에, 옛 증기기관차를 보며 옛시절을 떠 올렸습니다.
피난지에서 철길 바로옆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기에 건널목 사고를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기차가 지나가면 뛰어가 매달려 한참을 가다 뛰어내리곤 하고 놀기도 했습니다.
친구 중에는 잘못 뛰어내리다 발목이 짤린 친구도 있었지요,
작가님의 글에서 반세기도 더 지난 날을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행사 때 뵙겠습니다.


김경렬	안영하십니까? 늘 잊지않고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날씨가 추워져서 독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몸조심하시고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겨울 행사에 뵙겠습니다.	12/2 08:43

겁없는 산행

첫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