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정찬열
ㆍ작성일	2018-05-20 18:57

ㆍIP: 115.xxx.212

청밀 서리의 옛 추억

청밀 서리의 옛 추억

오늘날처럼 수리시설이 변변치 않았고 먹을 것이 궁하던 시절에는 대부분의 농가가 가을이면 보리를 심었고 밀을 심었다. 밀을 심는 이유는 밀가루 생산을 위함이기도 하고 농사철 농주의 원료인 누룩을 만드는데 필수적으로 밀기울이 들어간 요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여름철 밀가루로 국수를 만드는 원료가 되기도 했다. 또한, 오늘날처럼 먹거리가 풍족하지 못한 시절에 강낭콩을 넣어 소다를 넣어 만든 밀가루 빵이 간식으로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뿌린 밀 씨앗이 겨울에 추웠던 한파를 이겨 내고 통통하고 보리보다 키가 크게 잘 자란다. 이렇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정성껏 가꾼 밀이 5~6월 무렵이면 파란색에서 약간 누렇게 익어 가는 계절이 온다. 그 무렵이면 머지않아 모내기 시기가 분주한 시기이다. 6~70년대 보릿고개가 한참이고 먹을 것이 대부분 힘들었던 시절에 밀 서리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나이가 어린 우리는 집마다 대부분 한두 마리씩 기르는 소에 풀을 뜯어 먹이기 위해 소를 몰고 들로 나온다. 한마을 우리 또래 2~3명이 만나면 몰고 나온 소를 큰 뚝 이나 냇가 뚝 에 매어두고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밀밭으로 접근하여 주인 몰래 밀 줄기를 낫으로 베어 한 움큼씩 베어들고 산골짜기나 구덩이 진 곳을 찾아 들어간다.

그리고는 여기저기서 불을 지필 마른 나뭇가지를 한곳에 모은다. 그리고는 불을 지펴 불을 피우고 베어온 밀을 불에 굽는다. 밀을 굽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불에 타지 않을 만큼 검게 구워진 밀은 후후 불어가며 손바닥에 놓고 비비면 파란 알갱이만 까져 나온다. 손바닥에 비비면서 호호 불면 껍질은 다 날아가고 밀알만 손바닥에 남는다. 구워진 밀을 볼이 터지라고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 야금야금 씹어 먹는 모습이 앙증스럽다 못해 얼굴이 숯 검둥이가 되어 서로 미소를 지으면 입과 이마에는 하얀 백인이 흑인 놀이라도 하는 모습들이다.

이런 맛을 잊을 수 없어서일까? 세월이 많이 흐른 2000년대 무렵 지천명(知天命)쯤 때의 일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하던 어느 날 친구와 나는 고향에 어머님은 돌아가고 아버님 산수(傘壽)가 넘어 시골집을 지키고 계실 때 일이다. 그 무렵에는 농촌에 밀을 재배하는 것을 보기 힘들 때인데 아버지께서는 그리 넓지 않은 논에다 밀을 심어 놓았다. 친구와 함께 갔을 때 무렵이 5월 초였는데 마침 밀을 구워 먹을 정도의 푸르름이 뭍 어 날 때 친구는 옛날 생각이 났는지 밀을 한번 구워 먹고 싶다는 것이다. 친구의 요청도 있지만, 옛 추억이 생각되어 그러자고 하였다.

우리는 그리 많지 않은 밀을 낫으로 베어 집으로 가져와서 부엌에 앉아 옛날 방식대로 밀을 구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비벼 입에 털어 넣고 씹어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예전에 그런 맛은 찾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밀 품종이 달라져서 그럴까 전혀 옛날에 먹어보았던 그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세월이 가면서 옛날 그런 품종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밀에서 풍기는 그 맛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은 아마도 세상이 달라진 만큼 맛이 좋은 음식에 길들어진 탓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아니라면 그때처럼 먹을 것이 궁해 무엇을 먹어도 입에 질감이 좋은 탓도 작용했으리라 생각해본다.

깔깔대며 어린 시절의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추억에 담겨 있는 그 시절, 철없던 기억이 떠올라 입가에 해맑은 미소가 대신한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그때가 그립다. 먹고살기 힘들고 가난에 시달려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팠던 그 시절이지만 행복의 지수는 그때 비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지금 느끼는 심정을 함께했던 노년이 된 지금 그 친구도 같은 생각일까? 지금은 이 세상을 하직한 친구도 있고 단발머리 소녀들은 대부분 서울로 객지로 시집 장가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 때의 손자 손녀를 낳아 까맣게 추억도 잊고 살 것이다. 그리운 옛 친구들아 언제나, 고향에 함께 모여서 그 옛날 밀 서리 해볼 때가 있을까?
20180520 기(記)

김경렬

2018-05-20 21:41

`정찬열`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재미있는 밀서리 이야기, 한달음에 배독하였습니다.
지천명에 그시절 그맛을 기대하셨다니 순진하십니다.
입맛만은 그때처럼 순진하지 않기때문이지요.
재미난 추억담 감사합니다.


정찬열	안녕하세요 김경렬 작가님! 필담이 부족한 글 배독해주시여 감사 합니다. 그런대 최근에 알고 보니 밀품종도 수입품종이여 병충해는 강하고 밀가루는 많으나 맛이 우리 토종 보다 못하다네요 항상 건안 하시길 기원 합니다. 감사 합니다.	5/21 22:17

김경렬	행복한 고희연과 출판기념회에 더불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유럽 여행 잘 다녀 오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5/29 17:52

김상화

2018-05-22 01:49

`정찬열`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글 매우 재미있습니다.
정찬열 작가님 반갑습니다.
6~70년대의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참으로 실감 나게 엮으셨네요
읽으면서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생각나 입가엔 미소가
나도 모르게 번지네요
재미있게 빚어 내린 글 잘 읽고 갑니다
정찬열 작가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정찬열	반갑습니다. 김상화 작가님! 귀한걸음 흔적에 감사함 전합니다. 7-6~70년대 이쯤이면 보릿고개에 못먹고 힘들어 하는 시절 이였지요 풍요가 넘쳐나는 오늘날과 상반이 되지요 석가탄신일 자비로운 성불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5/22 19:28

백낙은

2018-05-23 16:10

`정찬열`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정찬열 작가님.
우리 수필 서재 작가님들 안계시면 무슨 재미로 살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밀 서리의 추억은 나를 70여년 전으로 되돌려 주네요.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낭만을 모르고 사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우리는 가난해서 힘든 경험도 했지만,
풍요로운 시대도 살아보는, 두 세대를 다 경험하는 행복한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칠순 축하드리려 가려고합니다. 그날 뵙겠습니다. 평안하소서.


정찬열	황우작가위원장님 그간 잘 계셨지요 저의 행사에 참여해주신건 반갑지만 원거리 여행에 오후늦게 끝나니 오신걸로 마음으로 대신 하겠습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편안한 시간 주말 보내세요 감사 합니다.	5/25 19:14

백낙은	정찬열 시인, 수필 작가님. 행사에 참여는 했지만 오히려 폐만 끼쳤습니다. 경상도 음식은 비교적 맵고 짜지만 전라도 음식은 깜짝 놀랄만큼 맛이 있었습니다. 과거 군대생활 할 때 송정리에서 먹었던 식사, 반찬이 스무가지도 더 올라왔던 것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행사는 정말 성대했고 영광스러웠습니다. 과분한 환대에 감사드리오며 온 가정에 서광이 빛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5/28 14:33

정찬열	황우목사 위원장님! 성격상 마음이 차분하지 못해 가시는 길 보살펴 드리지 못한채 먼거리에서 오신 사모님까지 함께하신 손님께 예의가 아니 였습니다. 부족한 부분 너그러히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항상 가내 건안 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5/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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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에 을의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