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대한문인협회-수필

ㆍ작성자	김숙자
ㆍ작성일	2016-01-03 01:31

ㆍIP: 100.xxx.189

나의 열 손가락

연희동 김숙자

열 손가락은 모양과 크기가 모두 다르다.
만약 손가락이 똑같은 모양과 크기를 하고 있다면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평상시 손에 관해서 관심이 없고 하도 험하고 커서 때때로 열등감에 빠지며 감출 때가 있지만,
요즘은 관절염이 생겨 점점 굽어지는 양손의 새끼손가락을 펴며 손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무지막지하게 크고 못생긴 큰손이다.
젊었을 때는 이렇게 크고 못생기지는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커지는 것 같다.
막대같이 뻣뻣한 열 손가락을 조물조물 주물러 본다.
첫 번째 마디가 굽어진 새끼손가락에 더욱 애착이 간다.
아픈 것도 있지만, 자꾸 변형되는 손가락이 걱정돼서이다.
진작부터 손에 관심을 두고, 가꾸며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밉거나 관절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손가락도 길쭉하며 결혼 때 매니큐어를 칠해보곤 평생에 손톱 손질을 하지 않았던 손톱치고는
그리 못생긴 편은 아닌 것 같다.
손등은 지방이 다 빠져서 주굴 주굴 하지만, 로-션을 바르고 나면 훨씬 부드럽고 작게 보인다.
손뿐만 아니라 워낙 내 몸을 가꾸는 것에 관심이 없고 게을러서 지금은 몸 어느 곳 하나 반반한 데가 없다.

젊을 때부터 급한 성격과 비위생적이란 생각 때문에 추운 겨울에도 장갑을 끼지 않고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 청소를 맨손으로 하였다. 물에 퉁퉁 불은 손은 남편의 손보다도 더 큰 왕손이 되어버린다.
곱고 예쁘던 손이 험한 일을 하면서 관절에 이상이 오고, 뒤틀리고, 두툼하고, 남자 손처럼 큰 왕손이 되었지만,
어떤 손가락을 만져도 자극에 의한 아픔과 촉감은 똑같이 느껴진다.
볼품없는 열 손가락에 서열을 정해보려고 해도 정할 수 없고 모두가 소중하고 귀한 내 분신이다.

이 소중한 왕손으로 아이들 셋을 변변한 도우미의 도움 없이 혼자서 곱게 키웠으며
나름대로 가정 살림과 교직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 셋을 키우는 데는 차별 없이 모두 소중하게 생각하며 온 정성을 다하여 몸이 부서지려는 듯 키웠고,
지금까지도 그들을 위해 있는 힘 다 바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식에게 바친 그런 희생을 생색내며 보상을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저희나 이런 바보 같은 고생을 하지 말고 몸을 아끼며 행복한 삶을 꾸려가길 바랄 뿐이다.

어느 날,
왕손이 되도록 자식 셋을 서열 없이 평등하고, 귀하고, 소중하게 키워낸 나에게(내 생각)
딸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오빠와 남동생보다 차별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치과대학 졸업, 치과병원 개원, 다시 고시공부, 사법연수원 수료, 또 미국 유학,
교육 기간이 25년이란 긴 세월만큼 온갖 정성과 뒷바라지, 허리가 휠만큼 많은 교육비가 지출되었건만,
제 오빠만큼 엄마의 정성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저보다 1년 뒤에 미국에 온 아들 가족 다섯 식구에게 우리가 먼저 경험한 불편한 외국생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챙겨주고 도와주는 것을 보며 차별 대우를 받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힘들고 불편한 외국생활의 시행착오를 먼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뿐이야."
남편까지 딸의 처지에서 대변하고 있다.

장남은 첫째여서 엄지손가락처럼 귀하게 키웠다.
둘째는 딸이기에 검지처럼 또 소중하고 예쁘게 키우려고 노력했다.
셋째는 아들이고, 막내여서 나머지 손가락의 사랑을 다 주는 것처럼 온 정성을 쏟았다.
나의 열 손가락처럼 모양과 크기가 다르며 그들의 사고와 능력이 다르지만,
누구만을 선택할 수 없을 만큼 어느 자식이든 똑같이 귀하고 소중하였다.
내 몸보다 더 중하게 여기며 뒷바라지를 했다.
남편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자식 셋을 버리고는 못살 것 같은 심정으로 그들을 키웠다.
이런 마음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의 마음은 다르다.
나는 기억을 못 하는데 어렸을 때의 서운한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선
적재적소에 억하심정을 퍼붓는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단다.
중학교 때 친구에게 만화책을 한 보따리 빌려와서 침대 밑에 숨겨놓고 읽는 것에 분개하여
만화책을 모두 찢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딸의 친구도 그 만화책을 책방에서 빌려온 것이라 책값을 보상하느라 고생한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이런 과거사 일까지 끄집어내며 모질고 무식한 어미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제 오빠나 동생이 이런 일을 하였다면 그런 식으로 머릿속에 박히는 꾸중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퍼붓는다.
차별대우를 받고 성장했다고 두고두고 곱씹는다.
지금까지 두 아들은 한 번도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어미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으며
스스로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두 아들도 어릴 적, 어미에 대한 서운한 추억이 그들 가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을 것만 같다.
다만 어미와 함께할 시간이 없어 서운했던 추억을 표현할 기회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보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이런 진리와 같은 생각으로 자식들에게 똑같은 정성으로 키웠다고만 생각해 왔다,
왜, 그들의 성장 발달단계와 심리 변화를 이해하지 않고, 내 기분과 내 방식대로 양육하였을까?
서운했던 추억이 뇌리에 남아 뜬금없이 표출하여 이 어미를 당황케하는 딸에게 정말 미안하였다.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양육을 못 한 이 어미가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이 아주 조심스러워졌다.

어느 카페에 올린 글에서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어린 딸에게 차별대우하던 친정어머니였지만,
이제 가족과 가정을 꾸려가는 딸에게 의지하며 외로움을 달래려는 노인이 거치적거림이 된다는 글과
수십여 명이 공감한다는 댓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도 자식들에게 걸거침이 되는 것이 아닐까?

부모는 열 자식을 거닐 수 있고, 자식을 위한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
자식과 그들이 뿌린 씨앗까지도 모두 소중하고 내 손가락 아프듯 귀한 존재로 생각하지만,
자식은 부모가 짐이 될 수도 있다.
자식들을 위해 몸 바쳤다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어떤 지인이 보낸 좋은 말씀을 상기해 본다.

행복한 노후는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백낙은 2016-02-08 11:55	김숙자 작가님. 안녕하세요. 설날 문안인사 드립니다. 지난 1월 3일 나의 열손가락이란 제목만 올려 놓으시고 오랫동안 본문이 없어 어려운 일은 없으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지난 발에도 가족의 화목한 모습 잘 보여 주셨는데 올해도 더욱 건강하시고 화목하시며 우리 서재도 불을 잘 밝혀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행복한 명절 되시고 향필하소서. 평안을 빕니다.

마무리

알래스카크루즈 여행기 9회 :여행 끝날(시애틀 공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