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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01_next.gif박목철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박목철
ㆍ작성일 2018-02-04 13:18
ㆍIP: 59.xxx.243
立春大吉,


한파가 몰아친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입춘인 오늘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다행이다.
이렇게 추운데 무슨 입춘이야? 하는 볼멘소리는 듣지 않아도 될 듯싶기도 하니 말이다.
사실 입춘은 실제로 봄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봄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절기상 봄이 드는 날이라는 입춘을 맞으며 실제로 봄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겠지만,
-그래도 입춘인데 추워 봤자 며칠이나 더 춥겠어- 하는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는 심리적
봄인 입춘은 봄을 기다리는 이에게 반가운 절기인 것은 틀림없다.

겨울이 유난히 추운 올해는 입춘이 언제이지? 하고 입춘을 기다리기도 했다.
입춘이 따뜻한 봄날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겨울이 다 갔다는 마음의 위안은 되니 말이다.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입춘과 옛 분들이 기다리던 입춘의 의미는 상당한 차이가 크다.
지금은 밥을 굶은 사람은 없는 풍요로운 세상이라, 굶주림의 고통을 실감하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밥을 굶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아끼고 아껴도 겨울을 간신히 넘길 무렵이면
거의 식량이 바닥나게 되어 있는 것이 서민들의 삶이었다. 산이나 들에 나물의 싹이라도
돋아야 최소한 굶어 죽는 것을 면하게 되니, 아직 서릿발 같은 추위가 있다 하더라도 입춘은
"살았구나! 조금만 더 버티면" 하는 희망을 품게 하는 반가운 절기였다.

춘궁기란 단어가 이제는 그 의미를 아는 사람도 희소할 만큼 낯선 단어가 되었다.
비가 내려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천수답이 전 농토의 대부분이었던 시절,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되풀이해 농민의 애간장을 태웠지만, 농사야 어찌 되든 지배층의 삶은 어렵지 않았다.
제 입 풀칠하기도 어려운 판에 가혹한 세금은 농민의 삶을 더욱 옥죄어, 견디다 못해
논밭을 버리고 달아나면, 일가친척에게 세금을 대납게 하던 -족징(族徵)- 그마저 달아나면
-인징(隣徵)-이라 하려 이웃에 살던 사람에게 강제로 세금을 물게 하던 나라가 옛 조선이고,
같은 나라 같은 땅에 살지만 입춘을 기다리는 마음은 같지 않았던 땅이 이 땅이다.

입춘을 기다리는 마음은 옛정서와 다르다 하더라도 아직도 입춘이 반가운 사람이 이웃에 있다.
지구 온난화가 온다는 걸 반기던 사람도 우리 주변에 있다는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국가에서 주는 연탄 몇 장으로 모진 추위를 견디는 어려운 이웃은 따뜻한 봄날을 애타게 기다린다.
온난화의 역설로 겨울 한파가 더 심해졌다는 사실이 가슴 아픈 일이기도 하다.

오늘이 입춘이니 이제 추위가 있다 한들 얼마나 더 춥겠는가,
따뜻한 봄 햇살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차별하지도 않고, 더 주고 덜 주고의 차이도 없다.
입춘대길이라니 입춘을 맞아 크게 吉(좋은)한 우주의 기운을 받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봄이 드는 날, 온갖 나빴던 일들은 찬 겨울을 따라 멀리 보냈으면 정말 좋겠다.
사람은 소망하는 대로 이뤄진다 했다. 立春이니 大吉하지 않겠는가. 모두 가슴을 활짝 펴자!
소외된 분들에게도 봄 햇살이 가득 한 한해였으면 좋겠다.



입춘대길,           소운/박목철

귀 기울이면
들린다
눈 덮힌 동토의 땅 밑
기지개 펴는 생명의 소리
시냇가 얼음 아래
시린 겨울 녹이는 봄의 소리,

동장군 무서워
닫혔던 대문 활짝 열고
맞고 싶은 빈객 어디 봄 뿐이랴
立春大吉,
겨울을 견딘 소박한 바람일진데,

봄을 반기는 마음은
늘 그 자리
立春인데 大吉하지 않겠는가,            -시집, 세월에 실린 나그네 발췌-
이름아이콘 김종덕
2018-02-05 14:46
회원사진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입춘은 봄이 든다는 말씀에 참 곱게도 쓰셨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래도 입춘인데 손님하나는 데리고 와야 겠지요. 찬바람이 같이 오면 또 어떻습니까? 곧 우리의 이;웃이 될텐데요. 고운글 뵙습니다. 작가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이름아이콘 김상화
2018-02-06 00:23
회원사진 		오랜만입니다. 박목철 작가님
봄이 오나 했는데 겨울이 다시 오는 듯 매섭게 춥습니다
자주 들리면 작가님으로부터 좋은 공부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를 못해 안타깝습니다
立春大吉에 대해 역사적이 고찰까지 알기 쉽게 풀어 써주시니 참 좋네요
누구나 읽고 감동할 글입니다
저로선 배고프고 못살던 시절을 자세히 빚어내셔서 과거가 영화 필름처럼
돌아가는 듯해 혼자서 빙그레 웃었답니다
오늘도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추운 날씨 감기 유념하시고 늘 행복하시기를
두 손 모으겠습니다.
늘 향 필 하시길 바랍니다. 박목철 작가님!
   
이름아이콘 백낙은
2018-02-06 10:58
회원사진 		소운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그러고 보니 입춘도 지났네요. 입춘이 지나도 여전히 춥네요.
그래도 땅 속에서는 새봄이 꿈틀거리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말씀 대로 "온갖 나빴던 일들은 찬 겨울을 따라 멀리 가고,
소외된 분들에게도 봄 햇살이 가득 한 한해" 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어서 해빙기가 오고
큰 기쁨의 봄이 어서 속히 다가 오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입춘대길 하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건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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