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자체에서 홍보 목적으로, 좋은 사진과 글을 후기로 남긴다는 조건으로
제공한 무료 항공권을 받아서 일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일본을 여러 차례 다니다 보니
같은 곳을 다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운젠(雲仙) 온천은 처음이기도 하고 이름이
너무 멋있다는 생각에 멋진 곳일 거라는 기대가 컸다.
일본을 다니다 보면 시골에서 마주치는 술이나 과자 이름이 너무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구름 雲자에 신선 仙, 얼마나 낭만적인 지역명인가,
운젠 온천 지역에 들어서자 정말 구름이 가득 깔린 신선의 땅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수증기 너머로 단풍이 곱게 물든 산야가 흐릿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정말 신선이 계신다면 사는 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가 다니는 도롯가에서도 수증기가 피어올라 오가는 차들이 불쑥 드러났다 구름 사이로
사라지는 것 같은 신비한 광경에 넋을 잃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려다 보니, 주차장 주변도 자욱한 증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억새가 우거진 산책로는 나지막한 산 중턱을 향해 이어져 있었고, 아마 하천이었을 듯
한 乾川 이곳저곳에서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광경을 보니 운젠이라는 지명이 저절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었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산책로를 따라 많은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자욱한 증기 속에 흐릿하게 드러나고, 간간이 들리는 감탄사는
뜻밖에도 대부분 한국어였다. 운젠 지역을 찾는 한국인이 많은 모양이다.
이른 시간에 여장을 후쿠다야(福田屋)라는 료칸에 풀었다.
대게의 경우 일본의 전통 료칸은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바닷물이 창문 밑에서 철썩이기도 하고, 깊은 골짜기가 창문 아래 아득히 보이기도 한다.
료칸 창문을 통해 바라본 운젠 지역의 경치는 한마디로 혼자 보기 가까울 정도였다.
짙게 물든 단풍 사이로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어우러져, "절경이다"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을 듯하다. 눈을 아래도 돌리니, 깊은 골짜기가 단풍 사이로 수줍게 숨어 있었다.
저녁을 6시 반에 먹겠다고 하고 나니, 우두커니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카(일본인은 로프웨이라고 함)를 꼭 타야 일본 단풍의 절경을 볼 수 있다는 당부도
있었기에 다녀오기로 하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비도 약간 부슬거리고 주차된 차를
꺼내 달라기가 불편해 한참을 망설이다 케이블카 타는 곳이 가까울 것으로 생각하고 택시를
부른 것인데, 예상외로 케이블카 승강장은 산길을 올라 상당히 높은 곳에 있었다.
-시간당 6천 엔- 빨리 보고 오시라는 택시 운전사를 뒤로 서둘러 케이블카에 올랐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일본의 가을 산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예전에 설악산 권금성 산장을 오르며 보았던 가을의 화려한 절경이 문득 떠 올랐다.
어쩌다 보니 한국의 단풍을 느껴본 지가 오래인데, 일본의 단풍에서 고국의 가을을 떠 올렸다.
아쉬운 것은 시간당 6천 엔이라는 속박이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
이었다. 연신 시계를 보게 되고, "빨리 가자" 그놈의 돈이 뭔지,
일본의 전통 료칸은 제공하는 식사의 격이 아주 높다.
일본 전통요리를 경험하려면 료칸에 숙박해 보라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일본인도 쉬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일본의 전통 료칸이다.
(지금은 호텔식의 대형 시설로 값을 낮춘 료칸이 있어 큰 부담 없이 체험이 가능하다)
자그마한 솥에 밥을 안쳐놓고, 너무 앙증맞아 손대기가 망설여지는 음식들이 계속 나온다.
보슬비에 옷 젖는다는 말은 일본 정찬을 먹을 때 알맞은 표현인 것 같다.
정성은 대단하지만, 우리 눈에는 감질나는 소꿉장난 같은 음식을 먹다 보면 배가 부르니 말이다.
눈으로 먹는 일본 음식이긴 하지만, 보슬비에도 옷은 젖는다.
저녁을 먹고 캄캄한 운젠 거리로 나왔다. 간간히 빗방울도 뿌리고 있었다.
운젠 온천 지구에 유명한 셈베이(煎餠) 가게가 있다고 꼭 들려서 맛보라는 조언도 있고 해서
찾아 나섰지만,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 물어야 했고, 한참을 걸어야 할 거리였다.
일본은 지역적 특성이 강한 나라이다. 우동발이 유명한 고장도 있고, 아주 한적한 시골임에도
유명한 양조장이나 제과점이 있기도 한 나라가 일본이다.
운젠에서의 모든 일정은 셈배이 가게를 들리는 것으로 끝났다.
온천의 나라 일본에서도 유명하다는 운젠온천, 대게의 일본 관광지가 그렇듯 저녁이면
정적이 감돌 만큼 조용한 것이 일본의 저녁 모습이다. 해가 진 운젠도 어둠이 가득 드리운 체
가물거리듯 내 뿜는 증기가 희미하게 멀리 보였다.
온천에 왔으니 노천탕에서 느긋하게 피로를 풀어야겠다.
그리고 낮에 사 둔 사케의 감미로운 맛에 취해 구름 위에서 노니는 신선의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雲仙의 秋心, 소운/박목철
곱게 물든 단풍은
지는 가을을 배웅한다고,
뽀얗게 서리는 증기는
쌓인 열기를 한숨 토하듯,
흐릿한 시야 너머
노을빛, 빨간 단풍, 아릿하게 서린 김,
왜
서럽게 보이는 거야?
백낙은
2017-11-20 10:16
소운 작가님.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부러움을 금치 못합니다.
일본을 다녀 오셨군요. 저도 가보고 싶은데 무료 항공권도 없고 ㅎㅎㅎ
雲仙의 秋心!
왜
서럽게 보이는 거야?
제가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내 나이가 어떼서" 라고 중얼거려 보지만 눈가에 자주 이슬이 맺히는 이유 말입니다.
고운 글 뵙게 되어 기쁨니다. 늘 좋은 소식 주시길 바랍니다. 은안하소서.
김종덕
2017-11-20 20:26
박목철 작가님, 안녕하십니까? 또 일본을 다녀 오셨네요. 일본은 아기자기해서 어디를 가더라도 좋은 풍경과 인상을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의 단풍은 정말 절경이겠지요. 운젠온천은 가보지 못하여 다른 말씀은 못드리겟지만 단풍은 절경이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말그대로 깊은 곳의 단풍, 그냥 부러울 뿐이겠지요. 일본은 자연관리를 잘하는 나라이라서 좋은 인상을 받앗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작가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김경렬
2017-11-20 22:40
와아!
멋진곳을 여행 하셨습니다.
글속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음이 절로 느껴집니다
제가 워낙 온천을 좋아해서리~~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박목철
2017-11-21 16:44
《Re》백낙은 님 ,
백낙은 위원장님 반갑습니다.
사실 묵은 숙소와 추천한 맛집 등에 대한 후기가 있으면
숙박비를 후원 받을 수 있다 했지만, 귀찮아서 포기 했습니다.
이젠 속박이나 규제가 주는 압박이 금전적 보상보다 더 크답니다.
여행도 젊어서 힘 있을 때 하라는 말이 실감나기도 합니다.
늘 격겨하시고 좋은 댓글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백낙은 위원장님,
박목철
2017-11-21 16:48
《Re》김종덕 님 ,
잊지 않고 찾아 주셔서 감사함을 전합니다.
일본은 자주 찾아도 늘 새로운 곳이라 생각됩니다.
지역적 특성을 잘 간직한 그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술 이야기는 그렇긴 하지만, 하나같이 첨가물이 같고 맛도 비슷한
우리의 술을 보면, 노력이 부족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크답니다.
날씨가 차겁습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김종덕 작가님,
박목철
2017-11-21 16:50
《Re》김경렬 님 ,
저는 목욕을 즐겨사지 않는 편이라, ㅎㅎ
노천탕은 좋아 합니다.
욕탕이 대게 창문이 없고 습해서 싫지만,
노천탕은 그렇지 않아서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운치가 대단하지요,
겨울 행사 때 뵙겠습니다. 김경렬 작가님,
이석희
2017-11-22 22:52
박목철 작가님!
글이 항상 물 흐름처럼 매끄럽습니다.
길어도 길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단숨에 배독하였습니다.
저도 겨울 온천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온양, 지리산, 동래, 전주 죽림 등지를 다녀 보았습니다만
기까이에 있는 수안보 온천이 참 좋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우선 비용이 안들고 물이 어쩜 으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일본 온천까지 멋진 여행길이었습니다.
박목철
2017-12-01 09:47
이석희 작가님 반갑습니다.
온천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예전 백암인근에 있는 덕구인가 하는 온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노천탕(지상으로 더운물이 분출)으로
개울가에 간이 시설로 정말 온천다운 온천이었지요.
지금은 물론 아닙니다 만, 개발되기 전에는 신기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행사 때 뵙겠습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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