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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식 수필가 문학서재

ㆍ작성자	김은식
ㆍ작성일	2014-11-02 23:40

ㆍIP: 222.xxx.76

아버지, 내 평생의 스승

아버지, 내 평생의 스승
- 김은식

어언 세월이 흘러 고인이 되신 아버지. 나에겐 또 한분의 스승이었다.
중학교 추첨제가 시행되던 1973년 첫 해, 뺑뺑이 은행알에 적힌 번호 6번을 뽑아 아버지께서 교직에 몸담고 계시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해 가을, 송충이 잡이 행사로 모처럼 야외활동에 나섰던 급우들과의 추억어린 사진 한 장이 지금 눈앞에 놓여있다. 그 시절 학우들 간에 통하는 아버지의 별명은 할배, 사진 속의 아버지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젊어 보이신다. 아마도 인자하신 성품과 제자들에게 후하셨던 마음씀씀이로 붙여진 친근감이 느껴지는 별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선생님들의 별명 하나쯤은 의례 갖고 있었던 장난꾸러기 그 시절, 비운의 별명을 가진 많은 선생님들과 비해볼 때 다행히 아버지의 별명은 그리 싫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한문을 가르치셨다. 일주일에 한두 번뿐인 한문수업시간은 늘 명절전날 같은 싱숭생숭한 기다림을 가져다주곤 했다. 우리는 왜 한문수업시간을 그토록 기다렸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분의 맛깔 나는, 고사에 얽힌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진다. 한시가락 한 소절 주절이 읊으시고, 한 시간을 채우시는 이야기에 혼이 나간 듯 입을 크게 벌리고 경청했던 50분의 시간은 그렇게 짧고 아쉬웠다.
오남매를 키우느라 어려웠던 집안 생활고에도 학교에서는 늘 소탈하시고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단 한 번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고 나에게조차도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 마디 하신 적 없다.
하지만 학교에서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내 가슴은 언제나 두근두근 했었다. 다른 학우들처럼 보란 듯 해보이지 못한 나의 성적 때문이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어머니께서는 끼니걱정으로 손님이 사온 수박껍질을 버리기 아까워 어두운 부뚜막에서 채 썰어 김치를 담그시곤 했었다. 지금도 어둑해지는 저녁 해거름이면 그 도마소리가 귀전에 머문다. 어린 마음에 각인된 기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법, 어머니의 도마소리는 나의 동년 모두를 포함하는 서정의 근간이다. 가난을 바탕으로 한 동년의 추억 하나쯤은 그 시절을 살아온 이들의 공동의 정서가 아닐는지?

월급날이면 어머니는 외상 장부를 계산해 내게 심부름을 시킨다. 앞길 가게에 얼마, 대로변 가게에 얼마를 받아들고 나는 외상값 심부름을 했다. 그리고 가게 아저씨가 집어주시는 건방 한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철이 든 형님, 누나는 그런 심부름은 내게 미루었고 나는 얼씨구나 좋다 곧잘 다녀오곤 했다.
그 시절 모진 가난 속에서도 제자들에겐 변함없는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는 누가 뭐래도 훌륭한 교육자였고 나의 스승이었다.

얼마 전 어머니로부터 대학연구비를 모두 가난한 제자들의 학업을 성취하는데 쓰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어려운 삶의 뒤늦은 푸념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올곧으면서도 순화를 지향하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선비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한 교육자의 지대한 일생과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운 세상, 못 보신 척, 못 들으신 척 인내하시며 제자들을 감싸고 품어주기만 하던 그 모습과 어린 시절 내 기억에 남아있는 가난과 영원한 선생님으로 남아 계신 아버지는 1973년 그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 마음 속에 웃으며 서계신다.

정찬열 2014-11-08 14:47	아버지이자 스승이신 교육자의 아버지 대학연구비로 쾌척하신 어머님 훌륭한 부모님들의 덕향이 누에 선합니다. 김은식 작가님의 뜻깊은 글에 쉬어 갑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백낙은 2016-02-08 12:02	김은식 작가님. 설 명절에 인사차 들렸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셨는데 요즘 좀 뜸한 것 같네여. 올해도 멋진 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실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되시고 건안 향필 하소서.

황양국 2017-08-10 11:59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좋은 글 잘 감상하였습니다.

김상훈 2019-01-01 21:40	김은식 작가님, 1년을 넘게 비운 작가 서재에 들어와 새해인사드립니다. 건강은 필수, 원하는 소망도 필수인 만큼 건강을 필두로 올해는 소망 한 가지라도 꼭 이루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서재에서 다시 뵙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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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날으는 것들은 생각에 젖는다	4	김은식	201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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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영합니다	2	admin	201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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