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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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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노복선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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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노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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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6-10-08 1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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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할머니 <수필>
전쟁 피난길에 굶주림에 지친 가족은 남쪽으로 내려오다 전라도 어느 땅끝마을까지 밀려 내려갔다
굶주림에 지친 가족은 아사 직전이었고
효심이 유난히도 지극하고 동생들을 끔직이도 아끼던
소년은 동냥이라도 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집을 나선다
바닷물이 빠져 육지가 된 길을 따라 섬으로 들어갔다
먹을 것을 얻어 돌아오던 중
밀물이 들어오며 바닷물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소년은 15살 너무도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다음날 물이 빠진 후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소년은 동냥한 쌀 주머니를 너무도 꽉 움켜지고 있어서 손가락을 펼 수가 없었단다
가족들이 굶주리며 기다린다는 생각에 숨이 멈추면서도
쌀자루를 놓을 수 없었던 게야~
이 이야기는 고향이 이북이던 외할머니께서 가끔 눈물을 지으시며 6ㆍ25 전쟁 중 피난길에
자식 사 남매 중에 가장 착하고 인물과 머리가 제일 좋아 별명이 천재 소년이였던
맏아들을 잃은 슬픔을 손녀 딸에게 가끔 들려 주시던 이야기다
아들이 죽기 며칠 전부터 어느 고승이 찾아와 이 집의 큰아들을 며칠만 데리고 있다 오겠노라고
간곡히 애기 했다고 한다
지금의 고비만 넘기면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
그러나 당시 기독교인 할머니는 중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돌려보내길 몇 날 며칠
결국 안 씨 성을 가진 할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돌아갔다가
며칠 후 또 찾아와서
오늘은 꼭 데려가야만 되겠노라고 작심한 듯 애기 했을 때는
이미 아들을 땅에 묻은 후였다
고승은 내가 한발 늦었노라고 너무도 절망하며 아까운 별이 졌다고 애석해 하셨다고 한다
그때 그 중의 말을 들어야 했는데...
할머니는 가끔 그 이야기를 하셨지만 돌아가시는 날까지 기독교 신자로 사셨다
그 시대를 거친 사람들은 누구나 그랬겠지만 전쟁은 곱디고운 할머니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고 말았다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평생을 고생을 모르고 사시고 멋 내기를 즐기시던 분이셨다
지금도 내 친구들은 가끔씩 할머니를 떠올리며 한결같은 이야기가
" 너희 할머니 참 곱고 이쁘셨어" 이야기할 정도였으니까
처녀시절 의과대학 간호학과 출신에다 빼어난 미모에 백인보다 오히려 뽀얗고 눈부신 피부를 가지셨고
우리나라 최초의 양장미인에다 하이힐을 신고 다니신 멋쟁이였다는게 친지 분들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지독하게 종교에 집착을 해서 속세를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학문과 명예 욕은 남아 있었는지
"만일 결혼을 안 했으면 사회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이름을 날렸을거야 ...
내 친구 아무개는 지금 대한 적십자사 총재고 누구는 지금 사회서 어느 직책을 맡고 일하고 그 시대 명성을 날리던 이름들을 외우곤 하셨다
내가 제일 잘 될 거라고 친구들이 얘기했었는데 ..."
간호대 졸업 후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근무하시다
도도하고 미인이신 할머니를 3년 동안 끈질기게 구혼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 결혼하셨다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결혼 전 나의 구애를 그렇게도 안 받아주고 애를 태웠다며 복수라도 하듯 바람을 피우셨다고 한다
심지어는 기생들을 단체로 집에까지 데리고 와서 기생파티를 벌이는가 하면 수없이 바람을 피우며 할머니 속을 까맣게 태우셨다고 했다
내 어릴 적 기억 할아버지는 나이가 드시고 몸이 편찮으심에도 불구하고 키가 아주 크고 호남형의 할아버지셨다
중국의 넓은 대륙을 말을 타고 다니시며 활을 쏘며 사냥을 즐기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가 미웠다고 하셨고 할아버지가 가장 귀하게 키우고 예뻐했다는
엄마와 나는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고 멋진 분이라 생각했다
할머니는 결혼 후 할아버지와 중국으로 건너가 개인병원을 크게 운영하며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아편 중독환자들이 많아 아편을 끊으려는 환자들이 차고 넘쳐 아편을 끊게 해 달라고
애원하며 입원하려는 환자들이 많아 병실이 항상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머리도 좋으셔서 발명품도 많이 특허를 내셨다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자 할머니는 가족들과 고향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재산을 다 가져올 수가 없어 금을 가져올 수 있을 만큼만 가져 왔다고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이건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며 나의 엄마에게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어 주셨다
음악과는 거리가 멀고 책 읽기를 좋아했던 엄마는 지겨운 바이올린을 이제는 안 하겠다는 생각에
할아버지가 안 보일때 바이올린부터 버렸다고 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정경화가 세계적인 바이올린 리스트가 되며 우리나라에서 연주하러 왔을 때
그의 바이올린을 공항에서 세관원들이 함부로 다루엇다는 뉴스가 나오자
엄마는 "그때 버린 바이올린이 정경화의 바이올린과 같은 메이커인데 그래서 할아버지가 절대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바이올린 배우는 게 싫어서 모르고 버렸잖아"
그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보다 내가 더 아까운 심정으로 들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 온지 얼마 후 전쟁이 터지고 할머니의 운명은 뒤바뀌고 말았다
황해도 연백의 대 지주의 자손인 할아버지네 땅을 안 밟으면 안될 정도의 그 많은 땅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오다 피난길에 아들을 잃고 남편과도 피난길에 헤어지고 할머니의 고생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할아버지 소식을 들었을 때는
포항 유지의 딸이고 일본유학까지 마친 여의사와의 사이에 내 또래 사내아이까지 있었다
그 후 할머니는 사회적으로는 배타를 받던 종교에 의존하며 돌아가시는 날까지 신앙심으로 살며 일생을 마무리하셨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의 종교적 맹신은 도무지 배운 사람으로서의 이해가 안 가는 집착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종교에 의존하지 않고서야 나약한 할머니가 살아 갈 수 있었을까?
같은 여자로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훗날 들은 이야기로는 그래도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었던 것 같다고
자식을 넸이나 두고 섬겼던 지아비인데 미움이 아니라 애증이라는 것을 자식들이 몰라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힘든일을 해 본 적이 없어서인지 어린 손녀딸의 눈에 비친 모습에서도 생활력은 무능력한 분이었다는
기억이다 가끔은 자식에게 맘이 상하시면 돈을 타 쓰는 게 자존심 상한다며 이제라도 자립하신다고
방아간에서 모찌떡을사서 소풍 가는 차림새로 아주 예쁜 네모 각진 소쿠리에 보자기를 싸서 나가시고
밤늦게 오셨는데
어쩜 단 한 개도 못팔고 그대로 오셨다 옷 장사를 하는 분을 따라다니며 장사 하는 법을 배운다 하고
정작 떡 사라는 말이 목에서 나오지 않아 보자기 한번을 풀어 보지도 못하고 따라 다니기만 했다고 속상해하셨다
덕분에 좋아하는 모찌떡은 내 차지가 되어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신이 났던 기억이 있다
며칠 후 또 떡 판다고 나가신 후 마찬가지로 단 한 개도 못 파시고 들어 오셨길래
초등학생인지 중학생 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어린 마음에도
내가 팔아도 몇 개는 팔았겠는데 ... 우리 할머니는 돈 버는 재주가 없으시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쨋든 모찌떡을 먹는 기쁨에 할머니의 속 상함은 모른 채 마냥 즐거웠다
철없는 손녀는 모찌떡이 생각나면 언제 또 떡 장사 안 나가시나 기다려 보아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시는 당신의 무능함을 알게 되셨는지 그 후로는 다시는 모찌떡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할머니의 모습은 흰색 블라우스가 약간 누렇게 변해도 안 입으시고
하얗고 깔끔하게 매일 갈아 입으시고 뽀얀 얼굴에 반듯한 이마 쪽 진 머리가 너무도 어울리는
곱고 이쁜 할머니셨다
할머니의 마음의 시간은 참담했던 전쟁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세월이 약이 되질 못 했다
남들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가슴에 묻어 두기엔
너무도 아까운 자식을 시간이 흐를수록 더 사무치게 그리워하셨다
어느 날 정철아! 정철아! 부르며 통곡하시던 모습을 본 손녀딸이 그때는 그 아픔을 나누기에는 너무 어렸다
지금 할머니의 나이가 되고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내 곁을 하나 둘씩 먼저 떠나는 이별의 슬픔을 겪고서야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한 회한이 마음이 저린다
할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생각이 스친 건
할머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정철이 삼촌을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만나셨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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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복선` 님이 선택한 답글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