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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 김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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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일선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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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김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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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15-06-14 1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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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등대섬의 회상
그 등대섬의 회상
내가 대학 일년생이었을 그 시절만 해도 그 섬에 가려면 돛단 조각배가 유일한 항해수단이었다. 그 때 기타아를 메고 다녔던 룻소의 신봉자 나의 젊은 날의 철학자 친구가 그 섬에 건너가 놀고 오자고 제안을 했고 내가 두말없이 흔쾌히 호응 했을 때는 그 조그만 돛단배가 그렇게 무서우리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 했던 것인데 막상 일엽편주로 어부와 친구와 나 셋이서 바다 가운데 나가고 보니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늬바람이 불었거나 마파람으로 바뀌거나 어부는 돛을 이리저리 조종하는데 너무도 태연해서 경탄을 금치 못 했지만 배 위에 놓인 모래주머니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바꿔가면서 빨리 옮기라고 고함을 지르는 데는 사믓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너무도 당연한 일로 돛단배가 역풍을 받아 나갈 때 지그자그로 항해하기 때문에 방향을 바꿀 때는 배가 반대로 기울기 마련임으로 기우는 쪽에 놓인 모래주머니를 들리는 쪽으로 옮겨야 배의 수평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재빨리 옮기라고 고함치면서 재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역풍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배가 쾌속으로 파도를 가르고 나갈 때 난간 밑에서 콸콸거리는 해조음 소리도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하였으니 난생 처음인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섬이 눈앞에 나타나면서 큰 바위섬이 방파제모양으로 우뚝 서있는 곳에 이루자 어부가 잽싸게 키를 돌려 잡아 조각배가 빙그르르 반 바퀴 돈후 후진하면서 고물 쪽이 배다리에 정확하게 닿게 하니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뭍에서 바라볼 때 등대는 그 섬의 정상에 하얀 건물과 나란히 서있어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섬엔 열여섯 가구의 어가가 있었는데 내 또래 애들이 대여섯 명이 되고 철학자인 친구가 잘 아는 사이인듯 모두 다정했다. 원래 나의 친구는 이 등대섬에서 바라보이는 장구도 출신이라서 같은 도서지방의 친구들을 두루 아는 처지인것 같았다. 우리들은 고구마로 점심을 때우고 등대로 올라갔다. 등대장은 거제도 출신으로 자녀들의 교육관계로 가족들은 모두 부산에 살게 하고 홀아비 신세로 외롭지만 강단지게 등대직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누이가 멀리 부산에서 외로운 오빠를 위해 이 고도를 처음으로 살피러 왔다고 했다. 남등대장은 소곤소곤 이야기를 잘하는 철학자 친구와 나를 보자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 다과를 내놓으며 입담 좋게 얘기를 늘어놓는다. 이렇게 뭍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며칠이나 되겠느냐 싶으면 이해가 될 성도 싶다. 우리는 등대에 올라 등대의 섬광이 십육초 정도 흐르는 이치를 들었고 무신호가 해무의 바다위에 울려퍼지는 이치도 들었다. 내려와서는 등대와 관사와 마당을 경계하는 벽돌담장에 기대어서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이 등대섬은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룡도(魚龍島)라는 이름 그대로 남쪽은 고기머리 모양을 하고 북쪽은 용의 꼬리 모양으로 길게 누워있으며 동쪽의 가슴팍에 마을을 보듬고 배꼽 부위에 포구를 열고 있는 형국으로 서쪽은 암록의 수림과 해벽으로 급경사지나 동서 양안에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담장에 말리고 있는 수십 쪽의 생선토막을 보고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용반장이 입담 좋게 말하길 얼마 전엔가 다도해 쪽에서 크나큰 구렁이가 십여 마리 헤엄처 오는 것을 남등대장이 발견하고 동네청년들과 달려 내려가 헤엄처 오느라 지쳐있는 구렁이들을 모래톱에서 몽둥이로 때러 잡았었는데 이것을 손바닥 크기로 토막 내서 약용으로 쓰겠다고 담장위에 말려 놓은 것이라고 했다. 뭍이 보이는 동쪽 담장으로 옮겨 달마산을 바라보며 이 섬의 옹기종기 앉은 돌담 집들도 보면서 수다를 떠는데 마침 모래 해변에 처녀 하나 물에 막 들어가는 것이 조그맣게 보였다. 와! 하면서 큰 소리로 외처대지만 비키니 차림의 처녀는 안 들리는지 아랑곳없이 홀로 헤엄을 즐기고 있다 한 마리 인어처럼. 동네청년들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한다 저 처녀가 남등대장의 누이라고. 저 처녀는 이 등대섬에 온 후 하루도 빼지 않고 이 담장에 기대서서 뭍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마을에서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뭍이 그리웠으면 얼마나 젊은이들과 얘기를 하고 싶었으면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함께 대화할 상대가 없고 함께 해수욕을 즐길 상대가 없는 오빠의 직장에서 얼마동안 만이라도 견디기는 무척 어려울 것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틀림없이 그 처녀의 젖가슴은 부풀어 올라 있었을 것을...
그날 밤 우리는 민간으로 후생사업을 나와 고향에 휴가 와 있다는 현역육군 용하사와 용반장과 함께 소주 한 병과 건어 안주 한 묶음 가지고 등대관사를 방문했다. 저녁 식사를 막 끝 낸듯 남등대장은 우리를 반가이 맞아들였고 커피를 내 온 누이에게 우리들 뭍에서 새로 온 인생철학자인 친구와 나를 소개하였고 우리에게는 누이가 동래여고를 갓졸업하고 내년에 대학에 진학 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소개하였다. 내가 미쓰남에게 물었다. 낮에 보니까 혼자서 해수욕을 즐기시던데 시원했어요? 미쓰남이 답했다. 물은 맑고 파도는 잔잔하여 좋았으나 마치 무인도에 혼자 온것 같아 쓸쓸했어요. 우리는 모두 공감하였으나 달리 위로할 말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침묵을 깨고 철학자가 물었다. 미쓰남은 지금까지 읽은 문학서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미쓰남이 고개 숙여 생각하는듯 하자 용하사가 그는 심훈의 상록수라 했고 그러자 미쓰남이 순애보와 테스를 들었다. 순간 내가 거들었다 정말이지 테스의 마지막 결정은 너무 아쉬었다고 하자 미쓰남이 테스의 순결하고 무구한 그 결심이 자기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고 했다. 철학자는 괴에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얘기했고 나는 톨스토이의 부활과 안나카레니나를 들었다. 이어 모두가 이광수의 유정과 무정을 얘기했고 그러자 용반장이 문학얘기는 그만하고 재미있게 노래하며 놀자고 제안해서 남등대장이 선창을 선창했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슈우베르트의 보리수를 원어로 불렀는데 그때 미쓰남의 눈이 뻔쩍이는 것 같더니 다음 차례 미쓰남은 화답하듯이 슈우베르트의 눈물인가 무엇인가 제목은 까먹어 생각이 나지 않은 / 흘러내린 눈물은 백옥 같은 눈 위에/로 시작되는 가곡을 불렀다. 청아하고 애잔한 목소리는 나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아! 슈우베르트의 겨울나그네! 겨울나그네 속에서 미쓰남과 나는 한마음이 되었다. 어언 자정이 넘어 우리들은 등대의 관사를 나왔다. 등대의 섬광은 뭍에서와는 달리 사위로 명암을 교차하면서 맴돌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고요하고 바람도 순해 돛단배로 항해하기 좋은 날인 것 같았으나 간밤 일을 돌아보니 무엇이 현실인지 어디까지가 꿈인지 분간할 수 가 없었다. 간밤에 분명코 용 하사네 집에서 철학자와 내가 쇼오펜하우에르와 까뮤를 놓고 30분 이상을 섬마을 젊은이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관망하는 가운데 싸우다시피 격론을 벌렸고 끝내는 용 반장의 만류로 노래판으로 돌려 흘러간 옛 노래를 100여곡이상 소리 높여 합창을 하고 자정을 훨씬 넘어서야 헤어진 것이 분명하거늘 관사에서의 미쓰남과의 대담과 노래향연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아! 아! 그러고 보니 미쓰남은 너무도 신비스런 존재로 내 마음에 담아지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뭍으로 돌아가기 위해 예의 그 돛단배를 다시타고 등대의 하얀 집을 쳐다보니 담장에 기대서서 미쓰남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어여쁜 등대의 처녀 미쓰남이여 안녕!
반백년의 세월이 지난 입동의 오후 나는 아내와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부부와 함께 땅끝에서 해물탕 점심식사를 하고 송호리 해변에서 잠시 쉬면서 그 등대섬을 바라보았다. 뽀얗게 보이는 그 섬에서 이쪽 해변까지 일직선으로 파도위에 반짝이는 별들로 눈이 부셨다. 나는 반짝이는 별들의 빛의 다리를 건너 그 등대섬에 건너가 보았다. 등대관리소 마당은 잡초들로 뒤덮였으며 등대는 자동화기계로 교체되어 무인등대로 전락하고 무신호는 폐쇄되어 해무가 덮여도 울지 않은 벙어리가 되어버렸고 관사의 현관에 들어서니 텅 빈 방에 남만보 등대장과 그의 누이 미쓰남과 철학자인 내 친구 이익춘과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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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