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이달의 시인 -자연의 법칙 속에 자연과 하나 되는 박종영 시인 박종영 시인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겨울 동장군의 칼날 앞에 나약하여, 바깥 잠을 잔다면 동사하고 만다. 그러나 아주 작은 새들도 수북하게 쌓인 눈 속에서도, 겨울 시린 칼바람에도 마음껏 하늘을 날아오른다. 이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과 하나 되고, 자연이 곧 자신인 자연 속에서의 삶은 연약한 듯 하면서도 강할 수밖에 없다. 박종영 시인의 작품에서는 자연과 동화되는 시인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 산문체의 장문의 시에서 느껴지는 시인의 삶은 자연과 동화되어 있다. 그 시인의 삶으로 한 발 발을 내딛어 보자.
<<프로필>> 충남 당진군 당진읍 거주 대한문학세계 시부문 등단 (주)동아환경 소장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정회원
<<작품감상>>
고독한 중년 / 雲悲박종영
바람의 몸뚱어리를 켜는 대팻날의 살 깎임 소리 턱밑으로 깔리는 어둠의 빛깔이 선 머슴아 머릿결처럼 벙글다 뼈는 뼈를 물고 삐걱거리고 살은 살을 물고 질긴 아귀 틀림 속으로 자꾸만 갈려 들어가는데 몸 트임으로 허공에 물을 뿌려 나를 밀고 나를 지워나가는 어둠 속의 미명
목마름에 돌아누운 초승달 흉터 위에 바람의 질긴 목청을 허공에 덧칠해 바른다 지층을 흔들며 석회질의 화석을 만드는 중년 낭창거리는 휘어진 몸을 구부려 고래심줄 같은 명줄로 목을 맨 활 시위 우주 속으로 세상을 들어 쏘아 올린다
차가운 겨울이면 낡은 무릎 관절은 바람이 들어 시리고 강둑을 걷다가 들국화 꽃잎을 뱉어내던 수많은 호랑나비 떼 납작 엎드려 벽 속에 웅크린 채 박혀있다 벽은 허공으로 시간의 화살촉을 수도 없이 나르는데 벽 속에 실뿌리를 내리고 키 돋움 하는 작은 생명체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살을 섞으려는 작은 풀잎의 몸부림
땅바닥을 기어가다가 몸을 까 뒤집고 버둥대는 벌레처럼 세상살이가 버겁다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한데 허옇게 탈색되어 시들어가는 마음 소리없이 조용히 나를 접어 내린다 중년의 이름은 시린 겨울이면 고독하기만 한데.,
검은 눈밭의 겨울여행
雲悲/박종영
구절리행 열차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옥수수수염 할아범 푸성귀에 감자며 고산지대 산나물 한 보따리이고 나오는 할멈 성긴 장날의 풍경이 저녁 어스름 속으로 까맣게 밀려들어가면 주섬주섬 챙겨 갈고리 손으로 펼친 난전을 서둘러 접는다
세월을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이리 살아왔는지 담배 한 대에 시름 풀고 기차는 또다시 똬리 튼 산길을 쉼 없이 헐떡거리며 오르는데 나이는 나이를 먹고 더는 갈 곳 없는 산골짜기 깊은 곳에 머물어 인적없는 그곳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철길도 묻히고 산도 묻히고 진한 햇살이 가지 끝에 걸리는 날이면 가슴속 숨겨두었던 속내의 편지를 꺼내 들고 예미 행 기차를 기다린다.
검은 황금의 땅 태백의 꿈들이 살아 꿈틀대는 그곳 겨울이면 묻혀버리는 기억들 동전 쏟아지는 소리 옆으로 화전민들의 뜬금없는 애환은 군불만 지펴대고 강냉이와 감자를 삶고 너와 지붕에는 조롱박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탄광지대 폐쇄된 탄광의 갱도에는 싸릿골 사람들의 꿈들이 서려 막장 깊숙이 도진 폐병만이 눈발 속에서 검게 휘날린다
사북을 지나 정선, 황지에는 검은 마약봉지를 든 승냥이들이 각지에서 모여들고 흔적도 없이 번지 없는 사택만이 검은 낙서와 부서진 문짝 서넛 팽개쳐있고 떠나버린 꿈들이 다시 오기만을 기다려 보지만 굳게 입을 다문 갱도만이 쓸쓸하다 늙은 꿈들만이 화전 밭을 일구며 목숨을 연명해 나가고 검은 비는 대지를 적시며 된바람만 만지작거린다
눈발은 정신없이 산등성이 위에 하염없이 내리고 이억 땅 삼만리 문명의 그늘 달빛 처연히 떠오르는 날이면 지독하게 생각나는 그리움 있어 숨돌릴 겨를도 없이 짓붉게 타는 단풍처럼 내 마음도 붉어지겠지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의 버들강아지도 목을 축이는데 내 마음은 벌써 그리움의 물결을 타고 흘러만 가고 애꿎은 담배만 연방 뻑뻑 게워내고 있어라 코 흘리며 뛰놀던 두메산골 촌놈의 상고머리에는 보름달 같은 도장버즘의 기계충이 돋고 강냉이 싸주시던 굵은 어매의 꼬부라진 마디 손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포삭포삭한 강원도 고랭지 감자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흐르는 눈물을 참아보지만 그냥 터져버리는 눈물을 어이하랴 오늘도 장날만 되면 잔뜩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구절리 완행열차에 오르는 아낙들의 정감 어린 사투리가 유난히 향긋하게 들려온다. 나 어릴 적 다녀오던 그곳 눈발이 하얗게 내리는 날이면 무척이나 검은 그곳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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